냉장고 수리 삽질기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냉장고 수리 삽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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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냉장고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2018년 여름에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 양문형 냉장고를 구입했는데, 소음이 생각보다 심했다. 신경쓰기 싫어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아내가 계속 불평을 해서 서비스를 받아보기로 했다. 어찌어찌 해서 기사가 집에 와 냉장고를 점검하고 약간 손을 봤는데, 나아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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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소음 측정 앱을 깔아 소리 크기를 재 봐도 설명서에 나와있는 소음기준을 초과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눈에 띄는 확실한 고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당장 쓰는 데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명확한 하자를 찾을 수 없으니 그냥 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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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냉동실 안에 성애가 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내는 냉장고가 처음부터 이상했다며 계속 투덜댔다.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 수분이 포함된 공기가 유입되면 성애가 낀다고 한다. 영국의 겨울은 몹시 습한데다, 아내가 장 본 음식을 냉장고에 넣을 때 오랫동안 문을 열어 놓기에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냉동실 안에 성애가 끼면 냉장고 효율이 나빠진다. 아내는 냉동실 온도가 충분히 낮지 않다고 했고, 이것 때문에 전기도 더 많이 먹을 거라 얘기했다. 맞는 말이다. 냉동실 성애를 제거하는 게 좋겠다. 인터넷을 조금 뒤져보니 성애를 제거하려면 냉장고를 끄고 기다려야 한단다.

하루 날 잡아서 냉장고 성애를 제거하기로 했다. 헤어 드라이어로 빨리 성애를 제거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냉장고에 좋지 않다고 한다. 냉장고 음식을 모두 꺼내고 전원을 차단해 냉동실 안의 성애를 제거했다. 다행히 겨울인데다 날씨가 추워 밖에 내놓은 음식이 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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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집에 스마트미터를 교체하는 동안 집 전체 전원을 차단했는데, 작업이 끝나고 한참 후에 냉장고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냉동실에 있던 냉동 음식이 모두 녹아 있었다. 냉장실도 별로 시원하지 않았다. 전기를 차단할 때 문제가 생긴 것인가?

공교롭게도 그 날은 아내가 장을 봐서 냉장고에 넣어야 할 음식이 잔득 있었다. 일단 김치 냉장고를 냉동 모드로 바꾸고 냉동실에 있던 음식을 김치냉장고로 옮겼다. 냉장실은 찬바람이 조금 나오는 것 같아 그대로 두었지만, 얼마 후 냉장실보다 밖이 더 시원한 것 같아 음식을 밖으로 옮겼다.

예전에 식물을 키우려고 샀던 작은 온실을 그늘에 두고 선반으로 삼아 음식을 보관했다. 다행히 날씨가 서늘하긴 했지만, 오후가 되면 그쪽으로 햇빛이 온실을 놓아둔 쪽도 햇빛이 들었다. 그러나 햇빛을 피해 온실을 계속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빨리 먹어서 없애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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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웹사이트에 들어가 수리를 요청했는데, 24시간 안에 답을 준단다. 당장 음식이 다 상할 판인데... 다음날 바로 고객센터로 전화를 했다. 수리비로 £195를 선불로 내야 한단다. 수리비용은 고정이라고. 속이 쓰리긴 했지만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 이상 비용을 지출할 일은 없을테니.

셀제 수리는 외부 업체가 진행했다. 수리업체 웹사이트에서 기사 방문 예약을 했다. 가장 빨리 오는 게 다음 주 화요일. 주말이 끼어 있어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듯 하다. 냉장고가 고장난게 수요일인데, 기사 방문까지 일주일이나 걸리는 것이다. 에휴, 여기 살면 이런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

화요일, 기사가 방문해서 냉장고를 점검했다. 냉장고 소리를 듣더니 소음이 크다고 크다고 했다. 냉장고 뒤 패널을 뜯어보더니 컴프레서가 맛이 갔다고, 당장 부품이 없어 못 고치고, 컴프레서를 주문해야 한다고 한다. 얼마나 걸리냐니까 보통은 금방 된다고 한다.

몇시간 후, 부품이 곧 도착할테니 다음 수리 일정을 잡으라는 메시지가 왔다. '어, 생각보다 빠르네...' 생각하며 기사 방문 예약을 하기 위해 웹 사이트에 들어갔다. Today가 보여 순간 '이렇게 빨리 될 리가 없는데'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Fully Booked... 예약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은 다음 주 목요일이었다.

아니, 또 일주일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에휴, 그러면 그렇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제일 빠른 날로 기사 방문을 예약했다. 컴프레서를 교체하면 냉장고가 살아나겠지, 조금만 참자 생각했다. 그 와중에 아내는 임시로 쓸 냉장고를 사자고 했다. 돈도 없고 냉장고 둘 데도 없다, 제발 좀 참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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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부품을 가지고 오기로 한 날에는 공교롭게도 여러 이벤트가 있었다. 오전에는 아내 치과 예약, 오후에는 큰 아이 치아 교정 일정이 있었고, 작은 아이는 학원에 가야 한다. 일을 제대로 하기 우려울 듯 하여 휴가를 냈다. 사실은 냉장고를 제대로 고치는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3시쯤에 나는 큰 아이를 데리러 나가서 함께 치아 교정하러 가야 했고, 아내는 작은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가서 학원으로 향해야 했다. 기사가 늦게 올 경우를 대비해 옆집 할머니께 사정을 설명하고 기사가 3시 이후까지 일해야 할 경우 잠깐 와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기사는 2시쯤 왔다. 작업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두 시간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3시쯤 나가야 한다고 했더니 한 시간 안에 끝내보갰다고 해서, 필요할 경우 옆집 할머니가 오기로 했으니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작업하라고 했다.

어쩐 일이지, 작은 아이 학원은 선생님 사정으로 취소되었고, 기사는 냉장고 수리를 한 시간 안에 끝냈다. 아내는 기사가 작업을 마친 다음 학교에 가서 작은 아이를 데려왔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된 듯 보였다. 냉장고를 고치는 데 두 주가 넘게 걸렸지만, 일단 고쳤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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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일단 24시간 기다린 다음 냉장고에 음식을 넣으라고 했단다. 다음 날 오후까지 기다렸다가 장을 보러 갔다. 음식을 사와서 냉장고에 채웠다. 그런데 일요일에 문제를 발견했다. 냉동실에 있는 냉동 음식과 아이스크림이 모두 녹은 것이었다. 냉장고가 제대로 수리된 게 아니었다.

수리 업체에 연락했더니, 자기네는 수리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LG에 연락해야 한단다. 주말이 끼어있는데다 월요일은 공휴일이어서 화요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LG 고객센터와 얘기하고 다시 수리 일정을 잡았다. 가장 빠른 일정은 다음주 월요일. 또 한 주를 기다려야 한다. 주말에 갑자기 날씨가 포근해졌다. 음식은 다 맛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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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는 분이 집에 남는 냉장고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냉장고가 차에 들어갈지 의문이었고, 기대 보다는 짜증이 났다. 그냥 좀 참으면 안 되나? 토요일 아침부터 냉장고를 가지러 갔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집이었는데, 아저씨가 냉장고를 차에 넣는 것을 도와주셨다.

트렁크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뒷좌석에 뉘워서 넣을 수 있었다.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우리 집까지 와서 냉장고를 집 안으로 옮기는 것까지 도와주셨다. 작은 냉장고라 용량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며칠 지내는 데는 유용할 것 같았다. 어쨌든 용량이 적더라도 냉장실이 필요했다.

냉장고가 고장난지 벌써 4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가 아무리 영국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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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다시 월요일이 되어 기사가 왔다. 잠시 냉장고를 살펴보더니, 더 이상은 수리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는 컴프레서에 이상이 있어 부품을 교체했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냐, 지금 동작 안 하는 것은 아마도 냉장고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자기는 더 이상 수리할 수 없다, 다음 절차는 LG와 상의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LG 고객센터에 연락했더니 수리업체로부터 보고서를 받아야 다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게 언제냐고 물어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뭔가 의미 있는 다음 절차가 있는 줄 알았다. 가령 LG에서 직접 엔지니어를 보내 수리를 한다든가, 아니면 새 냉장고를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게 해 준다든가.

마침내 보고서가 전달되는데 사흘은 걸린 것 같다. 보고서가 얼마나 복잡하길래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LG 고객센터의 대답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수리를 못했으니 수리비로 받은 £195를 환불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아니 장난하나? 다음 절차라는 게 수리비 환불이었단 말인가.

수리를 못 하는 이유가, 부품 보관 기간인 5년이 지나 부품이 없어서란다. 아직 5년이 되려면 두세 달 남았지 않냐고 했더니 제대로 답을 못하고, 5년이 지나 부품이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냉장고 없이 한 달을 지내게 해 놓고, 이제와서 못고치니 수리비를 환불해주고 땡치겠다고? 너무 빡쳐서 전화를 그냥 끊어버렸다.

고장난 냉장고는 4년 9개월 전에 산 것이다. 그 때 £1,000 넘게 주고 구입했는데, 지금 비슷한 사양의 냉장고를 사려니 £1,700가까이 줘야 하는 것 같다. 7년 반 전 한국에서 올 때 사온 김치냉장고는 이사를 몇 번이나 다녔는데도 멀쩡한데, 새로 산 냉장고가 5년도 안 되어 이렇게 못쓰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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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살 때는 LG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을 겪고 다시 LG를 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내 아는 사람 중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사람이 있어 냉장고를 직원 할인가로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을 들으니 할인이 꽤 되는 것 같다.

냉장고를 고르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영국에서 파는 양문형 냉장고는 대부분 워터 디스펜서가 달려 있는데, 배관 공사가 필요하다. 집에 이사 오기 전에 알았더라면 바닥 공사할 때 한꺼번에 했으면 깔끔했을텐데, 그때는 그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그때도 냉장고를 고를 때 워터 디스펜서 없는 것 고르느라 피곤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냉장고 위치와 수도 배관 위치가 멀고 벽도 반대편이라 배관 공사가 쉽지 않아 보였다. 밖의 수도관을 연결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지만 관을 집 밖으로 하면 겨울에 얼거나 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배관공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냉장고를 고를 때 이런 저런 조건으로 필터를 설정하는 기능이 있다. 디스펜서가 없는 모델을 찾아보니 너무 구형으로 보였고 재고도 없었다. 배관이 필요 없는 모델을 조건으로 설정하니 조회되는 모델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포기했다. 바닥을 뜯던 벽을 뚫던 공사를 해야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 배관이 필요없는 모델을 발견했다. 어떻게 하다 찾았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홈페이지에 이런 기본적인 오류가 방치되어 있었다는 게 놀랍다. 원하는 냉장고를 찾았으니 홈페이지는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지금은 이 문제가 수정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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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주문한 냉장고가 화요일에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냉장고가 고장난지 한 달 하고도 이틀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드디어 냉장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화요일, 이제나저제나 하며 냉장고가 도착하길 기다렸지만,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록 냉장고가 오지 않았다.

배송 추적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니 배송 차량에 문제가 생겨 배송이 취소되었다, 새로운 배송 일정을 잡기 위해 곧 연락하겠다고 되어 있었다. 아,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그런데 이틀을 기다려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아내가 URL을 보내주며 여기서 일정을 다시 잡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미 알고 있는 URL이었지만 다시 한번 들어가보았다. 여전히 곧 연락하겠다는 메시지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Reschedule 버튼이 눈에 띄었다. 다음 날로 일정을 잡았더니 바로 예약되었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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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냉장고가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냉장고가 커서 현관도, 가든 문도 통과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포장을 벋긴 다음 현관을 통과했던 것 같은데, 자기들은 배달만 하기 때문에 포장을 뜯을 수 없단다. 아, 이 배송 기사들은 정말 배달만 하는 것인가.

아내가 예전에 펜스를 들어내고 옮기는 것을 봤다고 했다. 옆집은 비어 있었지만, 다행히 예전에 데클린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걱정말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 펜스 두 개를 들어내어 통로를 만들었다. 턱이 있어 무거운 냉장고를 옮기기가 쉽지는 않았다.

먼저 고장난 냉장고를 밖으로 꺼내고 새 냉장고를 집 안으로 옮겼다. 배송 기사들은 냉장고를 옮기는 데 요령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바닥에 바퀴가 있어 앞으로 밀면 쉬운데, 힘들게 옆으로 밀었다. 방향을 돌려 쉽게 끄는 걸 보여줬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새 냉장고를 집에 넣고 예전 냉장고를 차에 실은 후, 여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며 펜스를 다시 끼워놓지도 않고 가버렸다. 집에 들어와 냉장고 포장을 벗기다 아차 싶었다. 위, 옆을 감싸고 있던 스티로폼을 금방 벗겨냈는데, 바닥에 깔린 스티로폼을 꺼낼 재간이 없었다.

삼성 고객센터에 문의했더니, 내가 설치 서비스를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치는 알아서 해야 한단다. 아니, 이런건 기본 아닌가? 포장 제거하는 것데도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지난 번 LG 냉장고를 샀을 때는 냉장고를 집 안에 옮기고 포장을 모두 벗겨 수거해 갔었는데.

냉장고를 집안에 들여놓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저녁까지 기다렸다. 데클린이 퇴근했을 때 펜스를 다시 끼우면서 도움을 청했다. 데클린의 도움으로 바닥 스티로폼을 제거하고 냉장고를 원하는 위치로 옮겼다. 냉장고가 이리저리 흔들려서 힘들었을 테니 가동은 다음날부터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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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전원을 넣었다. 잘 동작하는 것 같았다. 새 제품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당연한 기대가 어그러지는 일을 너무 많이 겪었나보다. 새 냉장고는 확실히 조용했다. 역시 예전에 샀던 LG 냉장고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냉장고에 천천히 음식을 채우기 시작했다. 빌려온 냉장고에 있던 음식과 김치 냉장고에 쑤셔넣었던 음식을 새 냉장고로 옮겼다. 그런데 아내가 냉장고 문이 자동으로 닫지히 않는다고 불평했다. 아, 정말, 그냥 직접 닫으면 안 되나? 보통은 냉장고 앞쪽을 약간 높게 해 놓으면, 냉장고 문을 놓았을 때 자동으로 닫힌다.

앞쪽 높이를 조절해서 냉장실 문은 자동으로 닫히게 했는데, 냉동실 문은 뻑뻑해서인지 자동으로 닫히지 않는다. 냉장고 앞쪽 높이는 조절하는 것은 단순해서 직접 했지만, 새 냉장고 문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하는데도 안 되는 것을 보고, 아내도 포기했는지 그냥 손으로 닫아야겠다고 한다.

저녁에는 임시로 빌렸던 냉장고를 반납하기로 했다. 작은 냉장고라 아주 무겁지는 않았지만 부피가 커서 혼자 들기가 쉽지 않았다. 아내와 여차여차 차 앞까지는 옮겼는데, 차 안으로 넣기가 쉽지 않았다. 나와 아내가 낑낑대는 모습을 보고는 옆집(데클린과는 반대편) 할아버지가 도와주셨다.

아, 이제 모두 끝난 것인가. 새 냉장고도 가동을 시작했고, 빌렸던 냉장고도 반납했다. 냉장고가 고장난 지 38일만의 일이다. 한 시름 놓았다. 영국에서 삼성의 서비스는 LG보다 나을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서비스를 받을 일이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LG전자 고객센터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서비스 경험을 묻는 설문에 참여하라는 메시지였다. 아니, 내게 이런 시련을 주고, 5년도 안 된 냉장고를 갖다버리게 해놓고 무슨 기대를 하는 건지?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메시지를 계속 보내대길래 설문에 응했다. 어떻게 답했는지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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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냉장고 문제로 충분히 속을 썪였으니 이 정도면 끝난 법도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일단 냉동실 쪽 문이 뻑뻑했다. 냉장고 앞쪽을 살짝 높게 해 놓으면 문을 놓았을 때 자동으로 닫히는데, 냉동실 문은 조금 뻑뻑해 자동으로 닫히지 않았다. 나는 항상 냉장고 문을 꼭 닫지만 아내는 대충 놓아두면 알아서 닫히길 바란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아이스 메이커가 동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새 냉장고에는 얼음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기능이 있다. 냉장실에 위치한 물탱크에 물을 채워놓으면 내부 관을 통해 물을 냉동실로 보내 얼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능이 동작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고객센터에 연락해 이것저것 확인해보았지만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고객센터 상담원이 새 제품으로 교체하고 싶냐고 물었다. 냉장고 집에 들여놓느라 삽질한 것을 생각하니 고쳐쓰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니다, LG 냉장고도 처음 문제를 무시해 결국 5년도 못 썼지 않은가.

고생을 덜 하기 위해 설치 서비스도 추가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교체는 원래 주문과 동일해야 한단다. 상담사는 환불을 신청하고 새로 주문하라고 안내했다. 그럼 냉장고를 수거하는 시점과 새 냉장고가 배달되는 시점에 따라 냉장고 안의 음식을 처치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냉장고를 옮기려면 펜스를 들어야 하지만 냉장고 안의 음식을 버릴 수도 없으므로, 새 제품을 받은 다음 냉장고를 수거해가도록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그런데 그 새 냉장고 가격이 몇 백 파운드나 올랐다. 이런 젠장, 그냥 교체로 하고 이웃에게 한 번 더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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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일어났다. 어떻게 하다보니 아이스 메이커가 동작하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아내가 냉장고 내부를 청소하고는 아이스 버킷을 거꾸로 넣어놓은 것이었다. 버킷을 똑바로 넣고 기다리니 얼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문이 뻑뻑한 것도 해결해야 한다.

다시 고객 서비스에 채팅으로 문제를 이야기했고, 이 부서 저 부서로 계속 돌리다가 결국은 새 제품으로 교환을 원하냐는 얘기를 들었다. 기사를 보내서 한번 봐주면 안되냐 했더니 그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단다. 이해가 안 되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새 제품으로 교환하는 것보다 기사를 보내는 게 비용이 적게 들텐데.

교환한다 해도 새로 받은 냉장고 문이 지금보다 부드러울지, 아니면 똑같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은 분명하다. 냉장고를 집에 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냉장고를 바꾸는 동안 음식을 어떻게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한 달 반 동안의 냉장고 문제가 일단락되었다.

부록: 타임라인

DateDaysNote
2023-04-190스마트미터 교체. 작업 중 단전. 저녁에 냉장고 고장 발견.
2023-04-201LG전자 홈페이지를 통해 AS 요청.
2023-04-212LG 전자 고객센터에 전화, 수리 요청, 수리비 결제. 수리업체 기사 방문 예약.
2023-04-256수리 기사 방문. 부품이 없다고 돌아감. 부품 주문. 다음 수리일정 예약.
2023-05-0415수리 기사 방문. 컴프레서 교체.
2023-05-0516기사 권고에 따라 수리 24시간 이후부터 음식 채우기 시작.
2023-05-0718냉장고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것 확인.
2023-05-0819공휴일 (찰스3세 국왕 대관식 휴일) 주말과 공휴일 때문에 바로 연락 못함.
2023-05-0920LG 전자 고객센터 다시 연락, 기사 방문 예약.
2023-05-1324아내 아는 분이 안 쓰는 냉장고를 빌려줄 수 있다 하여 냉장고 빌려 옴.
2023-05-1526수리 기사 방문. 냉장고 확인 후 못 고친다고 함. LG전자 고객센터와 통화, 수리업체 보고서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함.
2023-05-1829LG 전자 고객센터에서 냉장고 못 고치니 수리비 환불해주겠다고 함.
2023-05-1930삼성전자 냉장고 주문, 냉장고 5월23에 도착 예정.
2023-05-2334배송업체 사정으로 냉장고 배송 취소됨.
2023-05-2536배송일정 재조정
2023-05-2637냉장고 도착. 삽질 끝에 냉장고 무사히 설치.
2023-05-2738냉장고 가동 시작, 빌렸던 소형 냉장고 반납.
2023-05-2940새 냉장고 아이스 메이커 동작 안 하는 것 발견.
2023-05-3041삼성전자 고객센터 문의, 상담사가 냉장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새 것으로 교체 권고.
2023-06-0244아이스 메이커 정상 동작 확인. 아내는 여전히 문이 뻑뻑하다고 불만.
2023-06-0345삼성전자 고객센터 문의, 상담사가 다시 교환 제의. 그냥 사용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