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과 결과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과정과 결과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과정은 좋았는데 결과가 형편없게 되기를 바라는가, 과정은 부족하고 문제가 있었지만 결과가 좋게 되기를 바라는가?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물론 결과가 좋은 쪽을 선택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현실에서는 이 둘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좋은 결과를 얻길 바란다. 다만 사람마다 좋은 결과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사람마다 능력과 취향이 다르다보니 어떤 사람이 취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 개인과 조직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다 보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알기가 어려워진다. 이럴 때 뛰어난 통찰을 가진 사람이라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일을 추진해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같이 평범한 인간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어 항상 지나고 나서야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곤 한다.

과정을 중시하는 것은 좋은 과정이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모두들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처해야 한다. 과정이란 어떻게 생각하면 결과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100일 걸리는 일을 할 때 하루하루의 결과가 좋으면(즉 과정이 좋으면) 100일 후의 결과가 좋을 것이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개발 프로세스(과정)가 좋으면 결과로 나오는 소프트웨어(결과)도 좋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각 단계로 나누어 단계별 활동과 작성해야 하는 산출물을 정의하고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1

삼국지나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을 보면 어리석은 인간들이 제 발등을 찍는 줄도 모르고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하다 얼마 지나지않아 파멸하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들도 좋은 결과(자신들이 생각하는)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다만 안목이 없고 생각이 짧아 자신의 행동이 상황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지나고나서 전체 상황을 조망하며 보기 때문에 그들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내 자신이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더 낫게 행동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좋은과정/나쁜결과"와 "나쁜과정/좋은결과"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좋은과정/좋은결과"를 추구한다.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 일하고 그게 과정이 되는 것이다. 다만 누가 생각하기에 좋은 과정이 다른 사람에게는 나쁜 과정으로 보이는 것이다. 요즘은 같은 결과를 놓고도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싸우는 세상이다.2

한 사람이 말한다. '과정은 좋았는데 결과가 안 좋았어.'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과정이 뭐가 중요해. 결과가 좋아야지.' 맞는 말이다. 과정 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과정은 좋았는데 결과가 안 좋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결과가 안 좋은 것은 과정이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다'는 말은 가능하다. 이건 사람 능력의 문제니까.

그러나 결과는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3 그때가 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좋은 결과를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노력하는 것, 그것이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말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1. 물론 개발 과정이 중요하긴 하지만, 나는 프로세스나 방법론 신봉자는 아니다. ↩︎

  2. 정치권을 보면 이런 예가 많이 있다. ↩︎

  3. 훌륭한 사람은 지나기 전에도 결과를 볼 수 있는 통찰을 가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