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증정본 처리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저자 증정본 처리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낸다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다. 처음 번역서를 냈을 때가 생각난다. 사비를 들여 수십 권을 구입해 회사 사람들에게 돌렸다. 한권 한권 서명해 동료들에게 나눠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쉬는 시간에 차 한잔 들고 사무실을 어슬렁거리며 동료 책상이나 책꽂이에 놓여 있는 내 책을 보며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러나 선물한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냥 책꽂이에 꽂혀 먼지만 쌓일 뿐이었다. 심지어 이사하거나 자리를 옮길 때 책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책 안쪽 표지에 일일이 '누구누구에게...'라고 써놓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버리고 가다니. 그 후 수십 권씩 사서 주위 사람들에게 돌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얼마 전 도올 김용옥 선생이 새누리당 홍준표 의원에게 선물했던 증정본이 헌 책방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트위터에서 봤다. 문재인 의원이 안대희 대법관에게 선물한 저자 서명이 담긴 증정본이 헌 책방에서 발견됐다는 기사도 봤다. 저자 서명이 있는 증정본을 헌책방에 내놓는 것은 몰상식한 짓이다.

저자 서명이 담긴 증정본을 소장할 마음이 없다면 헌책방에 팔기 보다는 폐기하는 것이 옳다. 그게 선물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나중에 저자가 찾아와 책을 잘 보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증정본을 선물할 때 '누구누구에게...'라고 쓰지 않는다. 그냥 서명만 해서 준다. 이렇게 하면 선물 받은 사람이 마음 편하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 책꽂이에서 자리만 차기하고 있거나 폐기되는 것보다는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읽히는 편이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