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암울한 미래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개발자의 암울한 미래

IT 분야는 기술 발전이 빠르기 때문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젊었을 때는 새로운 기술을 따라가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음주가무를 좋아한 것도 아니고 청춘사업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퇴근 후나 주말이면 컴퓨터 붙잡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필요 기술 관련 자료를 읽고 연습할 수 있었다. 노력만 하면 됐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결혼을 하니 아내도 챙겨야 하고, 자식도 챙겨야 하고, 부모님도 챙겨야 한다. 저녁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내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고민 끝에 새벽 시간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뭔가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 또한 쉽지 않았다. 아이가 늦게까지 잠을 안 자려고 버티는 날이 많고 일찍 자는 날에도 밤에 울면서 깨는 경우가 많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기술을 공부할 시간도, 뭔가를 연습할 시간도 부족하다. 이미 조금씩 뒤쳐지고 있는게 느껴진다. 요즘 모바일이 대세라지만 모바일 앱 개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안드로이드 쪽은 조금 깔짝거려봤지만 iOS쪽은 전혀 모른다. 웹 개발을 하고 있지만 모바일 웹도 거의 모른다. CSS로 만들어 놓은 온갖 신기한 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느껴진다. 자바스크립트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 언어를 완벽히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새로 나온다는 ES6나 최근 유행하는 Angular, Ember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한다. 자바8이 나왔지만 아직 자바7에서 새로 나온 기능도 다 확인하지 못했다. 클로저(clojure)를 공부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한때 오라클 DBA를 했다.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설치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설계하고 데이터 파일과 테이블스페이스를 설정했다. 데이터 모델을 검토하고, SQL을 튜닝하고, 성능이 잘 나오도록 인덱스를 조정했다. DR 시스템 구축을 위해 PL/SQL로 두 데이터베이스를 동기화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기도 했다. DBA는 데이터베이스 아티스트를 뜻하며 나도 아티스트라 떠들고 다녔다. 지금은 다시 프로그래머로 돌아왔다. 데이터베이스는 오랫동안 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데이터베이스 아티스트라 할 수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빠르게 무용지식이 된다. 파워빌더를 사용했지만 지금 파워빌더를 사용하는 곳은 없다. 대학 내내 C/C++를 공부했지만 지금은 C/C++를 안 쓴지 십 수년이 지났다. 이제 C/C++를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수년 간 자바 스윙으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지만 이제 스윙을 활용하는 곳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수 년간 DBA를 하며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았지만 지금은 활용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무용지식이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잊어버리기도 한, 내 머리속 깊숙한 곳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쌓여 있는 지식.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돌봐야 할 식구가 있을 때의 우선순위가 혼자 살 때의 우선순위와 같을 수는 없다. 내 인생에서 프로그래밍 외에도 중요한 일이 많다. 여전히 프로그래밍이 가장 좋지만, 자꾸 다른 일이 생겨 프로그래밍 기술을 갈고 닦을 시간이 줄어든다.

내가 언제까지 프로그래머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10년 후에도 여전히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을까? 그때도 내 지식과 기술에 비용을 지불할 회사가 남아있으면 좋겠다. 10년 후에도 내가 뭔가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참고

  • The Developer's Dystopian Future 이 글을 읽고 깊이 공감해 내 생각을 대입해서 몇 글자 적어 봤다.
  • 무용지식(obsoledge): obsolete와 knowledge를 합성해 만든 신조어. 앨빈 토플러와 하이디 토플러가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에서 만든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