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없어 생긴 일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휴대폰이 없어 생긴 일

한국을 떠나며 인터넷과 휴대폰 서비스를 해지했다. 휴대폰을 해지하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휴대폰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영국에 도착해 휴대폰이 없어 난처한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다음은 그 난처했던 상황 이야기다.

런던 히드로 공항

열 두 시간 반을 날아 겨우 런던에 도착했다. 출국 며칠 전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해 출입국 심사가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간단하게 영국에 입국했다. 나는 여행용 가방 두 개를 끌고 갔고, 아내는 작은 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고 갔고, 큰 아이는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앞에 무척 긴 내리막 에스컬레이터가 나타났다. 아무 생각 없이 에스컬레이터에 가방을 올려 놓고 탔는데, 갑자기 큰 아이가 무섭다며 에스컬레이터에 타지 않았다.

큰 아이가 예전에는 에스컬레이터에 잘 탔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지 에스컬레이터에 탈 때 혼자 타면 무섭다고 손을 잡아달라고 했다. 특히 에스컬레이터가 내리막일 때 더 그랬다. 나는 가방 두 개를 끌어야 했고, 아내는 유모차를 밀어야 했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 탈 때 큰 아이 손을 잡아줄 수가 없었다. 미리 상황을 예상했다면 타기 전에 잘 준비해서 함께 내려갈 수 있었겠지만, 오랜 비행 시간 동안 한 숨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였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이미 내려가고 있었다. 잠깐 어떡해야 하지 망설였다. 다시 뛰어 올라가기엔 너무 내려온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올라 올께."

아내에게 소리쳤다. 끝까지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는 길이 있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올라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에스컬레이터 위쪽까지는 너무 멀어 아내가 말 하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올라가는 길이 없어.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 하고 소리쳤지만,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휴대폰이 있었다면 어떻게 할지 통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아내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 위쪽까지는 목소리가 들리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고, 위쪽에서 어떻게 하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엘리베이터는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더 가서 겨우 엘리베이터를 찾았지만 원래 왔던 곳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오다가 가족과 헤어졌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여기서 기다리면 된다고 알려줬다. 나오는 길은 여기 뿐이라고.

아내가 이쪽으로 나오길 기대하며 길목에서 기다렸다.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갔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몇 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이게 무슨 일이람. 아까 그 에스컬레이터에서 내가 좀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후회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다시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갔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없었다.

한참 지나서야 아내와 아이들이 오는 게 보였다. 아내도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한참을 기다렸단다. 큰 아이는 아빠가 없어져서 놀랐던 모양이다. 꼭 안아주며 아빠가 실수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임시 숙소

휴대폰이 없으니 불편한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빨리 휴대폰을 개통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숙소에서는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영국에서 휴대폰 개통하는 방법을 찾아보니, 은행계좌가 없어도 Pay-as-you-go로 휴대폰을 개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불로 일정 금액을 내고 SIM 카드를 교체하면 후 금액이 소진될 때까지 휴대폰을 쓸 수 있다.

통신사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보니 임시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대리점은 리버풀 스트리트 역에 있었는데, 걸어서 10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내 핸드폰과 아내 핸드폰을 모두 챙겨 리버풀 스트리트 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역에 도착해 당황하고 말았다. 역이 굉장히 컸는데 통신사 대리점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역 주변을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문득 열쇠를 안 가지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앗, 망했다.'

숙소에는 안내 데스크도 없어 열쇠가 없으면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현관에 초인종 비슷하게 생긴 장치가 있긴 했는데 어떻게 조작하는 것인지, 제대로 동작은 하는 것인지 확인하지 않았기에 걱정이 되었다. 한국 아파트였다면 현관 앞에서 기다리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가거나 나올 때 잽싸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숙소는 안에 아파트가 겨우 아홉 개 뿐인데다 그나마도 다 찼는지 알 수 없었다. 건물 안이나 입구에서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일단 현관에서 초인종을 조작해 보았다. 호수를 누르고 Enter 버튼을 눌렀더니 집안에 있는 인터폰으로 신호가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신호가 가는 것 같기는 한데 정말 집 안 인터폰에서 벨이 제대로 울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열 번도 넘게 계속 눌렀는데 응답이 없었다.

'아아... 집 안으로 어떻게 연락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 안에 한국에서 가져온 인터넷 전화가 있긴 하지만, 거기로 전화를 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휴대폰은 아직 개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못 쓴다. 주변에 공중전화가 보이긴 했지만 동전이 없었다. 게다가 공중전화로 국제전화를 거는 방법도 몰랐다. 바로 옆 건물 안내 데스크에 사람이 있길래 가서 도움을 청했더니 경찰에게 얘기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어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하면서 점원에게 혹시 경찰서가 어디있는지 물었었다. 점원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국제전화를 걸 수 있는 공중전화에 대해서도 물어봤지만 역시 모른다고 대답했다. 일단 아메리카노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문득, 스마트폰을 와이파이에 연결하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내가 노트북을 쓰고 있다면 내가 카톡으로 보낸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을꺼야.'

메시지를 계속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아, 노트북을 꺼놨나보다. 젠장!'

아내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면 카톡 메시지를 확인할텐데. 아내 휴대폰까지 모두 챙겨나온 걸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혹시 카톡으로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숙소에 있는 인터넷 전화로 전화를 걸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을 확인해보니 한국은 새벽 3시 반, 소용 없을 것 같았다.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문득 나보다 하루 늦게 런던에 온 성국씨가 생각났다.

'그래, 성국씨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성국씨에게 카톡 문자를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숙소 인터넷 전화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전화를 걸어도 집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카톡으로 다른 방법이 없을까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숙소 관리 업체인 실버도어에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현관에 연락처가 적힌 패널이 있다고 해서 연락처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숙소로 갔다.

그런데, 이건 정말 기적이라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현관으로 가는 데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잽싸게 달려가 현관 문이 닫히기 전에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열쇠를 집에 두고 나와 못 들어가고 있었는데 당신 덕분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숙소에 처음 도착해 겨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나도 숙소에 처음 도착했을 때 픽업 기사의 도움으로 겨우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 사람도 같은 처지였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숙소 열쇠를 찾도록 도와주었다.

겨우 3층 숙소 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한참 문을 두드리자 아내가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카톡 메시지도, 인터넷 전화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은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열쇠를 집에 두고 나왔기 때문에 겪은 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 통화가 가능했다면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시도하고 아내가 받지 않았더라도 밖에서 기다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역시 당황했겠지만 그래도 이때처럼 많이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들으니, 성국씨는 집 안에서는 와이파이만 되고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 전화를 걸 때는 집 밖으로 나가고, 다시 내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는 일을 반복했다고 한다. 성국씨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그날 집에 들어가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워킹 역

런던은 월세가 너무 높다. 내 예산으로는 런던에서 집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아, 워킹 근처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영국은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런던에서 멀어지면 월세는 싸지는 대신 교통비가 많이 든다. 대충 계산해보니 출퇴근 교통비만 1년에 660만원이 넘게 든다. 이런 미친... 그래도 월세보다는 부담이 덜하다.

아무튼 지역 컨설턴트와 함께 워킹에 있는 집을 여럿 둘러 볼 예정이었다. 워털루 역에서 9시06분 기차를 타서 9시33분에 워킹에 도착해 만나기로 했다. 출근 시간 교통이 어떻게 될지 몰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 워털루 역에 도착하니 8시도 되지 않았다. 기차표를 끊었다. 여기는 한국과 달리 기차표에 시간이 없었다. 그냥 아무 기차나 타고 목적지까지 가면 되는 것 같았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서점에 가서 책을 보며 여유있게 시간을 보냈다. 8시40분쯤 서점에서 나왔다. 워킹으로 가는 기차가 어느 플랫폼으로 들어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광판을 보았다. 내가 탈 9시06분 기차는 아직 플랫폼이 표시되지 않았다. '시간이 되면 표시되겠지.' 생각하며 계속 전광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9시가 넘도록 플랫폼이 표시되지 않더니 급기야 이후 기차에 쫙 DELAYED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사고가 생겨 기차가 모두 늦는다는 메시지가 전광판에 표시되었다. '이런, 그냥 8시쯤 기차탈껄!' 후회했지만 소용 없었다. 전광판에 보니 워킹을 지나가는 9시16분 기차가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보여 플랫폼으로 서둘러 갔다. 휴대폰이 없어 지역 컨설턴트에게 어떻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15분이나 늦게 워킹 역에 도착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워킹역 나가는 방향이 두 곳이 있었다. 지역 컨설턴트 차가 은색 메르세데스라는 것만 알았지 어느 쪽에서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차를 가져왔으니 주차장이 있는 쪽에서 기다리겠지 생각하고 그쪽 출구로 나갔지만 나를 맞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 반대쪽에 있나?'

철길 반대쪽으로 가 보았지만 거기에도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 메일을 보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와이파이 되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지하도로 몇 번을 왔다갔다 했지만 지역 컨설턴드를 만날 수 없었다. 순간 머리속이 하얘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늦어서 그냥 가버렸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전화를 걸어야 해. 하지만 어떻게?'

역 앞에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여 전화 한 통화만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매정하게도 역에 들어가서 부탁하라고 대답한다. 역에 들어가보니 전화를 부탁할 수 있을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공중전화가 보이기는 했지만 동전이 없었다. 옆에 M&S 푸드 상점이 보이길래 들어가 동전 교환을 부탁했더니 안 된단다. 어쩔 수 없이 2파운드 넘게 주고 주스 한 병을 사서 잔돈을 바꾼 다음 공중전화로 지역 컨설턴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에 성공했다. 내가 기다리는 위치를 설명하려 하는데 전화가 끊겼다. 젠장, 60펜스나 넣었는데 통화시간은 1분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다시 60펜스를 넣고 전화를 걸어, 내가 있는 곳을 말했다. 지역 컨설턴트가 공중전화 박스 안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날 기차가 난리가 났다는 것을 지역 컨설턴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느 쪽으로 나올지 몰라 자기도 이쪽 저쪽 몇 번을 왔다갔다 했단다. 휴대폰만 개통했다면 아무 어려움 없이 쉽게 만날 수 있었을 것을.

마무리

한국을 떠날 때 준비가 부족했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할 일을 정리하고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여유가 없다고 그냥 어떻게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해, 이렇게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