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오기 전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영국에 오기 전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한국에서 짐을 쌀 때 정리할 시간도 부족했지만 그냥 처분하기에 아까운 생각도 들어 온갖 잡동사니를 가져왔다. 영국에서 어떻게든 활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져오지 말았어야 할 처치 곤란한 세간이 많았다. 영국에 오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이렇게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싼 값에 처분하거나 아는 사람에게 공짜로 넘기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영국에서 살 집을 알아보면서, 처음 생각한 예산 안에서 우리 식구가 살만한 집을 구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어렵게 구한 집은 처음 예산보다 40% 정도 많은 금액을 월세로 내야 하지만 한국에서 살던 아파트에 비하면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방마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라디에이터 때문에 가구를 놓을 공간이 더 부족해진다. 집 구조도 한국과 다르다. 한국 집은 현관으로 들어가면 거실이 나오며 공간이 탁 트이는 구조가 보통인데, 영국은 좁은 복도를 따라 방들이 연결되는 구조가 많다. 큰 가구는 복도를 통해 방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결국 엘리베이터가 좁고, 복도에서 현관으로 들어올 때 꺽이는 부분의 공간도 부족해 흙침대와 소파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창고로 돌아갔다. 부랴부랴 필요한 사람을 알아봤지만, 짧은 시간에 고가의 가구를 살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고 여기에 에너지를 쏟기도 여의치 않아 결국 다른 사람에게 공짜로 넘겼다. 중고긴 했지만 깨끗하게 사용해 상태가 좋았다. 다시 사려면 족히 수백 만원은 들 것이라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결혼할 때 아내가 혼수로 장만해온 가구라 그렇게 처분하는 게 여간 마음 아픈 게 아니었다.

영국에는 거의 모든 집에 냉장고와 세탁기가 딸려있다. 한국에서 이에 대해 미리 설명을 들어 한국에서 사용하던 대형 냉장고와 세탁기는 처분했지만,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아기 세탁기는 영국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 세탁기를 들여놓고 보니 세탁기를 연결할 수도꼭지가 없었다. 결국 세탁기도 창고로 돌려 보냈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창고로 들어갔던 흙침대, 소파, 세탁기를 다시 배송하는 데 £180(약 31만5천원)의 추가 비용이 들었다. 이 비용은 물건을 인수하는 분이 부담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흙침대와 소파가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잘 쓰인다는 사실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세탁기는 버려졌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어떻게 사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멀쩡한 세탁기가 폐기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비데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변기와 맞지도 않았고 수도와 연결할 수도 없어 결국 그냥 버렸다. 아기 욕조도 영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한국은 욕실 바닥에 하수구가 있지만 영국 욕실 바닥에는 그런 게 없다. 욕실 바닥에서 플라스틱 욕조에 물을 받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목욕을 끝낸 다음 물을 처치하기가 곤란하다. 결국 멀쩡한 아기 욕조도 그냥 버려야 했다. 한국에서 처분했다면 누군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기 오븐도 버렸다. 220V, 60Hz에서만 동작하도록 되어 있었다. 영국 전원은 240V, 50Hz다. 전기 연결해서 켜 보면 동작은 하는데 소리가 너무 크게 났다. 아내는 겁이 나 사용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계속 사용하고 싶었지만, 정말 그 소리를 들으면 곧 폭발이라도 할 것 같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집마다 냉장고와 세탁기가 딸려있긴 하지만, 냉장고도 세탁기도 용량이 한국에서 사용하던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한 용량 덕에 냉장고에 넣어 두고 몇 달씩 썩히다 버리는 음식이 줄어들 것 같다. 세탁기가 작아 이불 빨래 같은 것은 꿈도 못 꾼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이불도 한국에서 어느 정도 정리하고 왔어야 한다. 영국의 겨울은 한국처럼 춥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세탁하기 어려운 두꺼운 이불은 있어봐야 짐만 될 뿐이다.

가져왔으면 좋았지만 두고 온 것도 있다. 영국의 집은 창 크기가 완전히 다를 것이라 생각해서 커튼은 한국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고 왔다. 이주 컨설턴드도 커튼은 가져가봤자 쓸모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 커튼을 가져왔어도 지금 사는 집에 그대로 쓸 수 있었을 것 같다. 영국에서 커튼 가격을 알아봤는데 너무 비쌌다. 한국에서 구입해 특송으로 영국에서 받는 게 더 쌌다. 커튼을 다시 사는 데 수십 만원이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