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 2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불운 2

2월 초, 아내 휴대폰 문제와 동시에 자동차에도 문제가 생겼다. 아내 휴대폰이 없는 상태에서 자동차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일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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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자동차에는 엔진 오일 경고등이 들어왔다. 작년 말부터 시동을 걸 때마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Service Now' 메시지가 표시되어 눈에 거슬렸는데, 엔진 오일 경고등까지 들어오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뉴몰든에 온 김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근처 자동차 정비소에서 엔진 오일을 교환하면 좋겠다 싶어 연락해 봤지만 일요일에는 영업하지 않는단다.

자동차에 대해 아는 게 없다보니 엔진 오일 경고등에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 혹시라도 운행 중 길가에서 자동차가 뻗어 버리는 게 아닐까 불안했다. 길퍼드에 폭스바겐 공식 정비소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거기서 점검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동차 정비소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온라인으로 서비스를 예약할 수 있었다. 화요일 오전으로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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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큰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올 시간이 되었다. 주차장에 가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계기판에 'Off Road'란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어, 이게 뭐지? 차를 당장 길가로 빼고 운행을 중지하라는 뜻인가?' 순간 당황했다. 아이 데리러 학교에 가야 하는데... 주차장을 한 바퀴 슬슬 돌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주차장 밖으로 차를 몰았다. 차가 길에서 퍼지면 보험사에 연락해야겠다 생각했다. 길로 나가니 'Off Road' 메시지가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내비게이션에서 차가 길을 벗어났다는 뜻으로 표시한 메시지 같았다.

아이들 학교에서 데리고 왔다. 주차장에서 후진 주차하는데 갑자기 "빠박!' 하는 소리가 났다. 차를 멈췄다. '분명 옆 차와 간격이 충분했는데...' 운전석에서 나와 옆 차를 살폈다. 옆차 사이드 미러가 접혀 있었다. '내가 받아서 접힌 건가?' 충돌 흔적은 없었다. 부딪힌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바닥을 보니 웬 깡통 하나가 찌그러져 있었다. 주차할 때 자동차 바퀴에 깡통이 깔려 터지면서 난 소리였던 것이다. 허탈했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엔진 오일 경고등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와진 것이 틀림없다.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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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또 휴가를 냈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길퍼드로 향했다. 차가 조금 밀리긴 했지만 늦지 않게 정비소에 도착했다. 정비소 사무 직원에게 다시 차 상태를 설명했다. 상담하면서 440파운드짜리 서비스 플랜에도 가입했다.

정비소 기술자가 차를 점검하고 상태를 설명해주었다. 원래는 엔진 오일만 교체할 거라 생각했는데, 자동차 상태가 심각했다. 왼쪽 앞 서스펜션 빔이 휘어져 있었다. 이것 때문에 자동차 바퀴 정렬이 맞지 않아 타이어가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젠장! 앞 타이어 두짝 새로 간지 1년도 안 됐는데...' 왼쪽 뒤 휠이 찌그러져 있었다. 정비공은 안전이 심각히 우려되므로 당장 수리해야 한다고 했다.

서스펜션 빔과 관련 부품을 교체해야 하고, 타이어 네짝 모두 교체해야 하며, 휠도 교체해야 한단다. 견적을 보니 1,600파운드가 넘었다. 으악! 으악! 으악! 그러나 어쩌겠는가, 안전을 생각하면 고칠 수 밖에. 수리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물어봤더니, 당장 알 수 없고 한두 시간 정도 지나봐야 알 수 있단다. 차를 못 쓰면 내일 아이 학교는 어떻게 데려다 줘야 하나. 머리가 아팠다. 제발 오늘 안으로 수리가 끝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휴게 공간에서 기다렸다.

오후 두 시가 넘어 오늘 안으로 수리가 안 끝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당장 집에는 어떻게 갈 것이며 내일 아이 학교는 어떻게 데려다 줘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정비소 직원이 차를 렌트하는 게 좋겠다 해서 렌트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전화를 걸어보니 차를 하루 빌리는 데 60파운드 가까이 됐다. 수리비에 렌트비에... 짜증이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주차장 출입도 문제였다. 등록된 차에 한해 주차증을 사용할 수 있는데 렌트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녁에는 주차장에 사람도 없을 텐데 어디에 설명을 해야 하나? 머리가 아팠다.

다행히 아내 친구가 정비소로 와서 태워주기로 했다. 부랴부랴 다시 전화해 렌트카를 취소했다. 다음 날 아침에 차 수리가 끝나길 기대하며, 아내 친구 차를 타고 학교로 가서 큰 아이를 태워 집으로 왔다. 그 분도 아이 엄마에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에 공부하랴 아이 돌보랴 자기 일 만으로도 힘들텐데,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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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에 차를 찾으러 가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에 또 휴가를 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혹시 몰라 아이는 왕복으로, 나는 1일 이용권을 끊었다. 아이는 학교에 갔다 오면 그만이지만 나는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왔다가 오후에 다시 학교에 가서 아이를 데려와야 했기에 1일 이용권이 더 경제적이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자동차 정비소에 전화를 걸어 언제 수리가 끝났는지 물어봤더니 아직 못 끝냈고 오후가 돼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일도 없어 그동안 미뤄왔던 자동차 보험 갱신 작업을 처리하기로 했다. 온라인으로 견적을 받아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 전화로 문의했다. 오랜 상담 끝에 해당 보험사에서 보험을 갱신하기로 했다. 이 보험에는 비상시 견인/수리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이 부분은 별도 보험에 가입했다.

오후 4시쯤 정비소에 다시 전화를 걸어 물어봤더니 오늘도 자동차 수리가 안 끝났다고 했다. 결국 내일도 자동차를 이용할 수 없을 듯 하다.

그 와중에 아내는 멀린패스를 신청하자고 했다. 나는 휴대폰 구입, 자동차 수리로 예상하지 못했던 큰 돈을 지출해 속이 쓰렸지만 아내는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멀린패스를 스탠다드로 신청하려 했지만 아내는 프리미엄으로 신청하고 싶어했다. 550파운드를 추가로 지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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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계속 휴가내는 게 부담스러워 회사에 출근했다. 정비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내일이면 자동차 수리를 끝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자동차 인수를 위해 또 휴가를 내기는 부담스러웠다. 휴가를 이런 일에 쓰고 싶지도 않았다. 정비소에 자동차를 집까지 보내줄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가능하다고 한다. 아내도 자동차를 자기가 인수할 수 있다고 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아내 휴대폰을 반품한 상태라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랩탑에 있는 카카오톡이었다는 점이다. 자동차 기사가 집 근처에 도착해 내게 전화를 하면 내가 카톡(보이스톡)으로 아내에게 알려주고 아내가 나가서 차를 인수해야 하는데, 과연 기사와 아내가 쉽게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주차카드를 차 안에 뒀다면, 기사에게 집 옆 있는 공영 주차장에 주차한 다음 연락하라고 하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멍청하게 차를 정비소에 맡기며 주차 카드를 가져오고 말았다. 집 근처에는 마땅히 주차할 만한 곳이 없어 내가 원하는 위치에 주차한 다음 내게 연락해야 하는데 그 위치를 영어로 정확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아내는 자기가 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내게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한다면 핀잔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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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드디어 정비소에서 자동차가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내가 원하는 주차 위치를 설명했다. 집 근처 주차 위치가 애매하기 때문에 기사에게 잘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정비소에서 걱정하지 말란다. 그러나 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얼마 후 운전 기사에게 전화가 왔다. 횡설수설 하는 것을 보니 상담사에게 열심히 설명한 것이 기사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다시 주저리 주저리 설명해서 내가 원하는 위치로 차를 옮기라고 한 다음, 아내에게 보이스톡으로 자동차를 인수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함참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엇갈린 것 같았다.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집에 다시 돌아가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에게 전화해서 어디 있는지 설명해보라고 했더니 역시나 엉뚱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아내는 밖에서 기다리다가 화가 잔뜩 난 채 집에 돌아왔다.

기사에게 주차 위치를 다시 자세히 설명했다. 기사가 주변 경관을 설명하는 걸 들어보니 이번에는 제대로 된 위치에서 기다리는 것 같았다. 화단 아내를 겨우 달래 다시 내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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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수업 시간에 강사에게 자동차 수리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바가지를 썼다고 핀잔을 주었다. 특히 타이어 가격은 바가지가 확실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내가 교체한 것과 동일한 타이어를 40% 정도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다음부터는 돈 쓸때 자기 허락을 받으라고 한다.

자동차 수리에 큰 돈이 들어 속이 쓰렸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꼭 필요한 지출이었다.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비용을 줄일 수도 있었겠지만, 휴대폰 문제, 자동차 수리, 자동차 보험 갱신 등의 문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면서, 그것도 영어로,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렇게라도 생각해야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