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바둑

한동안 바둑을 두지 않다가 최근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Online-Go란 사이트를 알게 된 다음부터다. 한국의 바둑 사이트와 달리 구글 아이디로 계정을 만들 수 있고,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둑을 둘 수 있다. 편리한 만큼 내게는 독이다.

한참 바둑을 둘 때는 하루에 몇 시간이고 바둑을 두었다. 그렇다고 게임을 즐겼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처음 몇 판은 재미있게 뒀다. 그러나 판 수가 늘어나면서 생각은 점점 없어지고, 나중에는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생각하면서 밤 늦게까지 바둑을 두었다. 중독 수준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나면 허무감이 밀려왔다. 그 시간에 책을 봤으면 좋았을텐데... 밀렸던 공부라도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나중에 읽으려고 쌓아뒀던 문서를 읽었으면 좋았을텐데... 차라리 잠을 잤으면 몸이라도 개운할텐데... 후회해봤자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버리는 시간이 한계점에 이르면 그만 두어야 겠다 생각하고 바둑 프로그램을 삭제했다. 몇 달 정도 바둑을 두지 않는다. 그러다 '한두 판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바둑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바둑을 둔다. 다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면 안되겠다' 생각하고 바둑 프로그램을 지운다.

그렇게 바둑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삭제하기를 몇 번이고 계속 했다. 그러다 맥북을 사용하면서부터 바둑을 조금 덜 두기 시작했다. 바둑 프로그램이 맥북에서는 동작하지 않았고, 맥북을 사용하면서부터 코딩과 글쓰기에 시간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바둑을 두려면 PC를 켜야 했는데 귀찮은 일이었다.

그러다 Online-Go를 알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바둑 프로그램을 삭제하는 것이 일종의 결심 같은 것으로 작용했다. 바둑을 두려면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바둑을 그만 두기로 했잖아! 뭐하자는 거야?' 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가 있었다. 이젠 그런 방어기제가 없다.

바둑 자체는 훌륭한 두뇌 스포츠다. 문제는 내가 바둑을 대하는 태도다. 바둑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후, 기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멈춘 채 승부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바둑을 두었지만 실력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게임을 즐기기 보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참을 두고 나서는 버린 시간을 후회한다.

그러면서 왜 두는 것일까? 담배를 끊고 싶지만 끊지 못하는 흡연자의 마음도 이와 비슷할까? 바둑을 공부하고 기력을 늘릴 생각이 없다면, 바둑에 투자한 시간에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바둑을 즐기지 못한다면 계속 둘 이유가 없다. 그만 두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