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에서 보낸 2년
영국에 온지 벌써 두 해가 지났다. 아마존 런던 개발 센터에 와서 합류한 팀은 티어1 서비스만 네 개를 맡고 있었다. 매니저 짐은 한국에서 전화로 얘기했을 때도 느낌이 좋았는데, 직접 만나니 더 좋은 사람이었다. 회사 일뿐 아니라 개인 일을 처리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른 영국 사람들의 발음은 알아듣기가 어려웠는데, 짐의 발음은 비교적 잘 들렸다. 팀에는 영국, 폴란드, 슬로바키아, 인도, 이란 출신 엔지니어가 있었고 액센트도 다양해 적응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아마존은 내부에서 개발한 여러 도구를 사용하는 데, 이런 처음 보는 도구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문서가 있기는 하지만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업데이트마저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영어 문서를 읽을 때는 속도가 몇 배는 느려진다. 문서를 영어로 쓸 때는... 정말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쓰고 싶은 말도 다 쓰지 못한다. 그래도 읽고 쓰는 것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말끼도 못 알아듣고 하고 싶은 말도 못 하다보니 점점 수동적으로 변했다
회사일 외에도 신경쓸 일이 많았다. 식구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도와야 했기 때문에 주의가 분산되었다. 회사에 있는 동안에도 식구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되어 회사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회사 동료들이 나의 이런 어려움을 이해하고 위로해주긴 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팀에서 충분한 역할을 못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첫 해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주어진 일을 해내기 급급했다.
팀이 두 개로 나뉘었다. 각 팀에서 티어1 서비스를 두 개씩 맡게 되었다. 온콜 부담을 생각하면 다른 팀으로 도망가는 게 상책이었지만 나는 현재 팀을 선택했다. 디바이스 프락시 자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다른 백엔드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들 우리 팀을 먼저 호출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팀은 동네 북이었다. 그러나 수천 대의 서버를 관리하는 일, 엄청난 트래픽을 처리하는 일 등 기술적으로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다.
레거시 코드를 걷어내고 디바이스 프락시를 제대로 만들고 싶었지만,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에 우선순위가 계속 밀려 디바이스 프락시를 개선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티어1 서비스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리고 팀을 또 나누었다. 원래 팀이 세 개 팀으로 나뉜 것이다. 작년 초, 마침내 디바이스 프락시를 개선할 기회가 찾아왔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잘 끝냈고 당분간 일정이 촉박한 프로젝트는 없을 예정이었다. 팀원들을 모두 디바이스 프락시를 어떻게 개선할까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시니어 매니저 닐이 디바이스 프락시의 모든 기능을 API 게이트웨이로 옮기겠다고 선언하며 우리 기대가 무너졌다. 매니저는 뭘 할지를 결정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할지 어떤 기술을 사용할 지는 엔지니어가 결정하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는데, 닐은 이를 무시했다. 팀내 모든 엔지니어가 반대했다. 장기적으로는 API 게이트웨이로 옮기는 것을 고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API 게이트웨이가 충분히 성숙한 기술이 아니었고 당장 옮겨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감정적 이유도 있었다. 기술 문제에 엔지니어의 의견을 묵살한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다. 닐이 엔지니어 의견을 존중하면서 적절히 설득하려 했다면 우리는 닐의 의견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물론 투덜거리긴 했겠지만. 닐은 권력으로 엔지니어를 찍어누르고 일을 밀어붙였다. API 게이트웨이 덕분에 시애틀에 3주간 출장을 가기도 했지만, 거의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1년의 절반을 허비했다. 그 와중에 짐은 다른 팀으로 떠났다.
동료들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새 매니저 데이브는 팀의 사기를 진작하고 닐로부터 팀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닐은 팀과 충분한 상의도 없이 엣지캐시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응답의 대부분이 동적 컨텐트라 캐시를 통한 이득이 크지 않다는 설명도 소용 없었다. 또 다시 두어 달 삽질을 했다. 동료들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내가 팀에서 가장 오래 된 엔지니어가 되었다. 나도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데이브 팀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떠난 동료의 빈 자리는 새로 온 동료가 채웠다. 이제 팀에는 루마니아,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 그리고 한국사람이 있다. 닐도 조용해 졌다. 마침내 디바이스 프락시를 개선하는 일도 시작했다. 중요 목표 중 하나는 다운스트림 문제로 우리가 호출되지 않게 바꾸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왔다.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시간을 쓰지 못하고 엉뚱한 삽질에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얼떨결에 팀 내 최고참 엔지니어가 됐지만 영향력은 별로 없다. 나는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는 것도 적고 영어도 짧아 나서고 싶어도 나설 수가 없다. 내 옆 자리 동료는 나서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 나서면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나서는 사람 옆에서 함께 나대는 것은 꼴사나와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한국에서건 영국에서건 이런 소극적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성격이 그런 데다 언어 장벽까지 있어 당장 고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스트레스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할 수 있는 말만 한다. 이런 상태가 계속 되니 이젠 하고 싶은 말조차도 거의 없다. 짐도 데이브도 모르면 모른다 말하고,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라고 충고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전혀 무례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조용히 넘어가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하며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라 주문한다. 1:1로 말할 때는 그렇게 하지만, 회의 시간에는 그렇게 못 한다.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혹시 미국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아마존은 시애틀에 본사가 있으니 그쪽이 기회도 더 많을 것이다. 지금보다 10년 정도 젊었다면 그리고 아이들이 없었다면, 그런 고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식구들 데리고 다른 나라로 다시 이주하는 것은 못할 짓이다. 또, 작년에 시애틀에 출장가서 확실히 느낀 건데 나는 시애틀보다 런던이 더 좋다. 원래 예전부터 미국보다는 유럽을 좋아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런던에 온 다른 한국인 동료들은 모두들 팀에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것 같다. 나만 아직까지 버벅거리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이제서야 어떻게 일해야 할지 감을 잡기 시작한 정도다. 많이 늦었지만 긍정적인 신호다. 지금까지는 주의를 분산시키는 일이 너무 많았다. 올해는 나을 거라 기대한다. 영어도,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신경을 더 쓰면 더 나아질 것 같다. 올해는 작년보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