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퇴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조퇴

거의 다 나았던 기침이 다시 심해졌다. 사무실에서 계속 기침을 했더니 매니저가 사내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너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괜찮냐?"

기침을 하긴 했지만 일을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기침이 좀 나긴 하지만 괜찮다. 고맙다."

"무리하지 말고 집에 가서 일하는게 어때?"

"고맙다."

"네가 지금 출발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눈치가 없는 편이다. 매니저가 이 정도로 말했으면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사무실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집에서 일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더 좋다. 아무래도 책상과 의자, 대형 모니터가 구비되어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편하다.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고맙다. 하지만 나는 사무실이 더 좋다."

돌려 말해서는 나를 쫓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마침내 좀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나는 네가 가능한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 또 네 기침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될까 염려된다. 사무실에 남아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네가 빨리 나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길 바란다."

그제서야 매니저의 본 뜻을 이해했다.

"알겠다. 나도 사무실에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싶지는 않다."

"좋다. 지금 떠나라.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반 강제로 쫓겨났다. 영국에서 3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번 일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 생각 없이 사무실에서 기침을 하며 일하고 있었고, 내 기침 소리가 동료들을 방해하고 내 질병이 동료들에게 전염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기침이 저렇게 심하면 집에서 쉬든가 재택근무를 하지 왜 사무실에 나와서 저러지?' 생각한 동료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구세대에 속한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무리 피곤해도 출근시간 전에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고, 몸이 안 좋아 책상에 엎드려 있더라도 퇴근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다. 아프면 집에서 쉬고 빨리 회복해 일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더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관행에 저항했다. 몸이 안 좋으면 휴가도 내고 출퇴근 시간도 적절히 조절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불합리한 사고가 내 마음속에도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기침 정도로 사무실을 떠나야 한다고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저녁에 매니저에게 메시지가 왔다. 자기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그래서 답해주었다. 아마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사무실에 남아 일했을 꺼라고, 오히려 내가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었다는 걸 깨닫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리고 다음 날도 집에서 일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