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급업체 교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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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창문턱에 브로드밴드 라우터를 올려 놓았다. 좀더 안전한 곳에 라우터를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엔 작은 실수로도 라우터가 떨어질 것 같았다.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아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청소를 하다 그랬는지 블라인더를 올리다 그랬는지 라우터가 떨어졌고 전원 연결 단자가 부러졌다. 어떻게 잘 붙여 놓으면 작동하긴 했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전원이 차단돼 라우터가 꺼졌다. 라우터를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전선을 테이프로 붙여 겨우 고정시켰다.
으이구, 내 말을 듣지. 나는 잘못될 가능성이 있으면 언젠가 잘못되기 마련이니, 항상 잘못될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나와 사고방식이 다르다. 사건은 벌어졌고, 이제 와서 아내를 탓한들 문제 해결도 안 될 뿐더러 상황만 악화될 것이다.
그 후 아내는 틈만 나면 라우터를 바꾸자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나 톡톡(TalkTalk)과 계약 기간이 남아 있고, 톡톡에서 사용자 실수로 손상된 기기를 다시 바꿔줄 리도 만무했다. 바꿀 때 바꾸더라도 계약 기간이 끝날 때 까지는 그냥 그렇게 쓰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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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한동안 인터넷이 자꾸 먹통이 되는 문제가 생겼다. 라우터를 다시 시작해도 한두 시간 후 다시 먹통이 되었다. 라우터가 죽는 것 같지는 않았고 DNS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았다. 라우터에서 구글 DNS를 쓰도록 설정을 바꾸면 좀더 오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톡톡 고객센터에 문의했지만 아무 이상 없다는 답만 할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며칠 후, 새로 설치한 WiFi 보안 카메라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안 카메라를 네트워크에 연결해 놓으면 한두 시간 후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것이었다. 이 중국제 카메라가 뭔가 이상한 짓을 하는 게 분명했다.
보안 카메라를 네트워크에서 차단하고 나니 인터넷 연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여러 번 테스트를 반복해 보안 카메라가 문제의 원흉임을 확인했다. 아내 성화로 설치하긴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이 중국제 카메라를 실내에 설치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던 참이었다. 잘 됐다 싶었다.
그러나 자기가 확인했을 땐 아무 문제 없으니 빼째라는 식의 톡톡 고객센터 수준에 대한 실망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당장 브로드밴드 업체를 바꾸고 싶었지만 참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른 업체로 바꿀 것이다. 조금 검색해보니 비슷한 가격에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업체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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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보다폰(Vodafone) 브로드밴드 광고 우편물이 집에 배달되었다. 톡톡과 계약 기간도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바로 전화해 계약했다. 예전에 브로드밴드 업체를 바꿀 때는 엔지니어 방문 없이 자동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번에는 엔지니어가 집에 방문해 회선을 활성화해야 한단다.
톡톡과의 계약은 2월 2일에 끝나니 그보다 한 주 전인 1월 27일에 회선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아차, 그 날은 병원에 가야 했다. 다시 보다폰에 전화해 그 다음 날로 날짜를 바꾸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회선을 활성화하면 서비스가 개시될 테고 그 기간동안 톡톡과 보다폰에 요금을 내게 되는 것이었다.
양쪽에 요금을 내는 기간을 줄이기 위해 엔지니어 방문일을 그 주 금요일로 바꾸었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았다. 보다폰에 전화했을 때 상담사들은 모두 친절했다. 엔지니어 방문일까지는 아직 기간이 꽤 남아있었기에 날짜를 변경하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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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후 보다폰에서 온 메일을 받았다. 엔지니어가 1월 27일에 방문할 것이며 당일 집에 아무도 없으면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는 친절한 안내가 있었다. 뭐라고?! 바로 보다폰에 전화했다. 상담사는 이상하다며, 자기가 확인한 바로는 엔지니어 방문일이 1월 31일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회선 활성화하는 날짜가 1월 31일이라고 다시 확실하게 알려주었으니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엔지니어가 1월 28일에 방문한다는 메일을 다시 받았다. '아, 이거 뭐지?' 보다폰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다시 보다폰에 전화해서 엔지니어 방문일이 1월 28일이 아니라 1월 31일임을 확인했다. '그래, 여긴 한국이 아니라 영국이다. 여기서 뭐든 한 번에 끝나는 경우가 있었나?'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서는 무슨 일이든 항상 이중 삼중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
1월 27일 오전. 병원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텍스트 메시지를 받았다. 오전에 보다폰 엔지니어가 방문할 거라는. 아, 정말! 화가 치밀었다. 진료가 끝난 후 보다폰에 전화했다. 내가 회선 활성화 날짜를 1월 31일이라고 보다폰에 수백만 번 말했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거냐고 따졌다.
거의 한 시간 넘게 통화했다. 그날 받은 텍스트 메지지는 무시해도 된다, 엔지니어는 1월 31일에 방문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나는 엔지니어가 1월 31일에 방문한다는 내용을 메일과 테스트 메시지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상담사는 텍스트 메시지는 가능하지만 자기는 메일을 보낼 권한이 없단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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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월 31일. 집에서 일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엔지니어가 찾아왔다. 지난 번 소포로 받은 라우터를 엔지니어에게 건넸다. 인터넷 연결이 끊겼다. 집에서 라우터를 연결한 후, 엔지니어는 밖에서도 회선 변경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두 시간 정도 걸릴 거라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BT 회선 박스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를 만났다. 잘 되고 있냐고 물었더니, 잘 되고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작업 시간이 길어졌다. '회선 교체 작업이 간단한 게 아니었나보네.' 생각하며 기다렸다.
점심 시간이 다 돼서야 그 엔지니어가 집에 다시 와서 작업이 끝났다고 알려주었다. 회선 연결은 끝났지만 활성화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아마 한두 시간 더 기다려야 할 거라 했다. 젠장, '오늘 재택 근무는 망했군.' 인터넷이 안 되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두 시간 후, 인터넷은 여전히 먹통이었다. 보다폰에 연락했더니 상담사가 뭔가 빠졌던 것 같다, 자기가 조처했으니 10분에서 15분 정도 있으면 될 거라 했다. 20분이 지났는데도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다시 연락했더니 이번에는 한두 시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다시 두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보다폰에 연락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자정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대답한다. 이전에 잘못 안내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5를 적립해주기로 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인터넷을 돌려달라고!
아내 휴대폰으로 테터링해서 보다폰 웹 사이트에 들어가 계정 정보를 확인하니 1월 9일부터 서비스 사용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었고 요금도 청구되어 있었다. 아니, 회선 활성화도 안 했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인데 요금부터 청구하다니.
이것도 상담사에게 투덜댔더니, 보다폰은 사용하지 않은 요금을 절대 청구하지 않는다며, 한 달치 요금을 감면해주겠다고 했다. 이걸 내 계정 정보에서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와 대화 내역이 저장되어 있을테니 나중에 딴소리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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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들어 인터넷 연결을 확인했다. 바로 실망했다. 여전히 불통이었다. 다시 보다폰에 연락했다. 상담사 말이 24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단다. 아니 이건 어제 대답보다 더 하지 않은가. 자정까지도 아니고 24시간을 더 기다리라니.
그러나 상담사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들이라고 이 상황이 즐겁지는 않겠지. 그래, 더 기다려주마... 인터넷이 안 되니 트위터나 유튜브 같은 데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독서 같은 뭔가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보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날 뭘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책을 읽은 것 같지는 않다.
일요일 오전, 여전히 인터넷은 불통이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보다폰에 연락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거냐, 이게 보다폰 스탠다드냐, 실망스럽다... 그러나 상담사는 다시 2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서비스 개통 지연에 대해 사과하면서 보상으로 두 달치 요금을 감면해 주겠다고 했다. 오... 두 달치 요금이면 금액이 조금 되는데... 짜증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개통이 연기되는 것을 우려했더니 내일은 꼭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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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에도 여전히 불통이었던 인터넷은 월요일 오후가 돼서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회선을 변경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데 사흘도 넘게 걸린 것이다. 개통 지연에 대한 보상으로 두 달치 요금이 감면되었다. 보다폰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내 계정에 크레딧이 쌓여 있는게 보였다.
그러나 보다폰 고객센터에 연락해 불만을 말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한 시간을 통화하고 나면 진이 빠져버렸다. 일이 잘못되어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 보다는 일이 잘 진행되어 고객센터에 연락할 일이 없는 편이 낫다.
보다폰은 고객관리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상담사가 업데이트한 내용이 일부 시스템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업데이트 되기 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안내 메일과 텍스트 메시지를 보내 고객을 혼란스럽게 하고, 고객과 고객센터에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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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이메일 안내에 따르면 보다폰에서 톡톡에 연락해 모든 과정을 진행할 것이며 고객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되어 있었다. 보다폰 고객센터에 전화했을 때도 이 부분을 여러 번 물어봤고 내가 톡톡에 연락하지 않아도 됨을 확인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톡톡에 연락해 확인하는 것이 확실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톡톡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으며 서비스를 종료하려면 한달 전에 통보해야 하므로, 다음 달 서비스가 종료될 것이고 그때까지 요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뜨아! 다시 보다폰 고객센터에 연락했다. 이번에 연결된 상담사는 내가 톡톡에 연락을 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여러 차례 상담사에게 안내 받은 내용과 메일 내용을 얘기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더 이상 소용이 없다고 판단해 매니저와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는 끝에 다른 상담사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메일에 씌어 있는 메시지를 읽어 주었다.
As part of our simple switching service we'll contact your broadband supplier for you – you needn't do a thing...
이게 무슨 뜻인지,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없지만 톡톡에는 직접 연락을 했어야 하는 뜻인지 물었다.
상담사는 이전 상담사가 뭔가 잘못 이해한 것 같다며 사과했다. 그리고 톡톡에서 부과되는 마지막 요금을 보다폰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이에 대한 문서를 요구했더니 모든 상남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자기가 따로 노트를 추가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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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에서 4월분 요즘이 청구되었다. 내가 2월에 해지하겠다고 통보했으니 3월까지 요금이 청구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4월까지 청구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톡톡 고객센터에 연락해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을 요구했다. 상담다 대답이 4월 요금이 청구되긴 하지만 다시 환불될 것이란다.
아니 이건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한참을 티격태격하다가 그냥 알았다고 하고 그만두었다. 뭐 어쨌든 환불 된다니까. 다시 한 두 주 있으니 톡톡에서 금액이 마이너스인 청구서가 왔다. 그러려니 했는데 생각해보니 어떻게 환불해주겠다는 설명이 없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환불을 따로 신청해야 했다. 홈페이지에서 환불을 신청하니 환불하는 데 2주 정도 걸린단다. '아참, 얘네들 참 사람 힘들게 하네...' 아무튼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돈을 돌려주는 것이니 큰 문제는 아니다. £30 정도 한 두 주 늦게 받는다고 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Covid-19 사태로 상황이 꼬였다. 보다폰 고객센터에 연락해 내가 톡톡에 추가 지불한 금액을 보상해 달라고 해야 하는데, 보다폰 고객센터에 연결이 안 되는 것이다. 급한 건 아니지만, 한참 지난 후에 보다폰에서 딴 소리 하는게 아닐지 걱정된다.
이렇게 올해 초부터 시작한 브로드밴드 공급업체 교체 작업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전에 톡톡과 거의 같은 가격으로 두배 속도의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만족스럽다. 나중에 톡톡에서 자기네도 두배 빠는 속도를 제공하겠다고 연락이 왔지만, 다 바꾼 다음 그런 제안이 무슨 소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