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퇴치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대나무 퇴치

집 앞뒤로 조그만 뜰이 있다. 앞뜰은 주차 공간과 풀밭이 있고 나무가 한 그루 있다. 뒷뜰에도 잔디밭과 꽃밭이 있고 캐빈과 헛간이 있다.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잔디보다 잡초가 더 많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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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계약하고 이사올 준비를 하는데, 뒷뜰 잔디밭에서 대나무 순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순을 잘라냈는데, 며칠 뒤에 보니 더 많은 순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대나무를 좋아했기 때문에 잔디밭에서 죽순이 솟아나는 걸 보며 신기해 하기만 했을 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대나무는 매우 빨리 자라는데다 뿌리도 엄청 빨리 퍼져 정원을 망칠 수 있고 심지어 건축물에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나무를 키우려면 화분 같은 데 완전하게 가두어야 하는데 옆집에서는 그냥 땅에 대나무를 심었고, 뿌리가 담장 밑으로 침범해 우리 집 뒷뜰 절반에 퍼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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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가 뒷뜰을 모두 점령해 버린다면 큰 문제다. 옆집 주인에게 말해야 하겠지만 옆집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직접 대나무 뿌리를 모두 캐내기로 마음먹었다. 작업에 삽과 곡괭이가 필요할 것 같아 찾아봤지만, 한국에서 사용하던 곡괭이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돈을 많이 들이고 싶지 않아 Wilko에 가서 제일 싼 삽과 쇠스랑을 구입했다.

이사 전에 집에 공사를 해야 해 이사하기까지는 몇 주 정도 시간이 있었다. 퇴근 후 저녁마다 이사할 집에 가서 두세 시간씩 대나무 뿌리를 캐내는 일을 했다. 삽과 세스랑으로 땅을 파내 대나무 뿌리를 캐내기 시작했는데,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대나무 뿌리는 이미 뒷뜰 절반을 점령하고 있었고, 그물처럼 퍼져 있었다.

잔디로 덮여 있을 때는 몰랐는데, 흙에 돌이 많이 섞여 있고 대나무 뿌리에 삽이 걸려 삽질이 쉽지 않았다. 땅을 파낼 때 오히려 쇠스랑을 사용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됐다. 땅속에서 얕게 퍼져나간 경우는 뿌리를 따라 땅을 파놓고 손으로 잡아당겨 뽑아냈지만, 조금 깊게 뻗어 있는 뿌리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흙을 파내 뿌리가 훤히 보여도 잔뿌리가 땅을 단단히 잡고 있어 쉽게 뽑히지 않았다. 그럴 때는 쇠스랑을 뿌리 밑으로 끼워 지렛대처럼 누르거나 밀어올리며 용을 써야 겨우 캐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하다가 쇠스랑 날이 모두 휘어져 버렸다. 땅속으로 무자비하게 뻗어나가는 대나무 뿌리를 보면 치가 떨렸다.

이사온 후에도 계속 작업하다 포기했다. 처음에는 한두 주 정도 열심히 하면 끝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하루에 몇 시간씩 몇 주를 작업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사온 후에는 다른 일거리가 많이 생겨 대나무 뿌리 캐내는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겨울에는 계속 비가 와 작업을 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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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어 봄이 되었다. 날씨가 좋아졌다. 뒷뜰에 파헤쳐진 흙더미에서는 온갖 잡초가 자라기 시작했다. 계속 저렇게 방치할 수는 없었다. 정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몰랐다. 뭔가 다른 도구가 필요했다. 아, 맞다. 미국에서는 아마존에서 호미를 주문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본 게 떠올랐다.

한국에서 사는 가격보다 세 배 정도 비싼 가격에 호미를 주문했다. 한 달 넘게 기다린 끝에 마침내 호미가 도착했다. 호미를 쓰기 시작하면서 좀더 효과적으로 대나무 뿌리를 캐낼 수 있었다. 먼저 대나무 순이나 잎이 보이는 곳 주변을 호미로 파내기 시작해 뿌리를 찾아내고 뿌리를 따라가며 땅을 파냈다.

호미로 작업하면 자갈이나 대나무 뿌리를 피해가며 땅을 파낼 수 있었다. 대나무 뿌리를 따라가며 흙을 파내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그러나 호미는 작은 도구기 때문에 넓은 영역을 작업할 때는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내 팔꿈치 통층은 아마 이때부터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이렇게 하루 몇 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옆집 대나무가 침범한 것이니 옆집에서 해결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옆집은 항상 비어있었고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창문은 천과 신문지 등으로 가려져 있었고, 주인이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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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연히 옆집에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가서 말을 걸었다. 젊은 친구였는데 이름이 스티븐이고 친구와 함께 와서 집을 정리한다고 했다. 사연인 즉, 원래 집에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죽는 바람에 그 집은 손자인 자신에게 상속되었다고 한다. 그 모든 일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났다고.

틈날 때나다 와서 집안 물건을 정리한다고 해서, 이사와 살 거냐 물어봤더니 짐 정리가 끝나면 집을 팔 거라고 했다. 아무튼 대나무 문제를 이야기했더니 꼭 해결해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온갖 덩굴식물이 담을 넘어 우리집 쪽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했더니 친구와 함께 와서 깨끗하게 정리해주었다.

나중에 스티븐의 어머니 팸도 알게 되었다. 고용한 정원사도 소개해 주었다. 그 정원사에게 우리집 뒷뜰과 대나무 문제를 상의했다. 그러나 그 정원사는 끝내 일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휴가가 끝난 다음 일을 시작하겠다고 하더니, 가을에는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봄이 되어 날씨가 나아졌을 때는 아예 연락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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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집 쪽에 있는 대나무는 결국 내가 모두 제거해야 했다. 그러나 옆집에 있는 대나무를 제거하지 않으면 뿌리가 다시 넘어올 것이다. 담장 바로 밑에 있는 대나무 뿌리는 캐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결국 다시 옆집에 말해보기로 하고 작업을 중단했다. 사실 너무 힘들기도 했고,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아 좌절하기도 했다.

어지럽게 파헤쳐진 흙더미는 곧 잡초로 뒤덮혔고 나중에 보니 곳곳에 대나무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작은 뿌리 조각 하나가 땅 속에 있어도 거기서부터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대나무가 다시 자라는 걸 방치할 수 없었다. 호미를 들고 눈에 보이는대로 찾아 캐냈고, 담 바로 밑에 있어 캐내기 힘들었던 뿌리는 장도리를 활용해 뽑아냈다.

담 밑에 있는 몇몇 뿌리는 결국 완전히 캐낼 수 없었다. 일부는 담 너머에 깊이 있어 캐낼 수 없었고 우리쪽에 있는 뿌리도 담 밑에 깊이 박혀 있으면 파내기가 힘들었다. 그런 경우에는 캐내는 걸 포기하고 짧게 잘라낸 다음 잘라낸 면을 불로 지지기도 했고, 대나무를 죽일 수 있는 강력한 제초제를 찾아 뿌리 절단면에 반복해 발라주었다.

팸을 다시 만났을 때 정원사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그 정원사가 제대로 일하지 않아 실망했다며, 이번에는 다른 정원사에게 일을 부탁했다고 했다. 새로온 정원사는 옆집에 있는 대나무를 제거하고, 뿌리가 담밑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장벽(root barrier)를 설치했다고 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대나무 뿌리가 다시 넘어오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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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잔디를 깔려면 흙을 파서 부드럽고 평평하게 해야 하는데 삽으로 하려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유튜브에서 정원관리 관련 동영상을 보다가 전동 경운기(tiller 또는 cultivator)를 구입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존에서 적당한 걸 골라 주문했다. 전동 경운기를 사용하니 땅을 고르는 데 힘이 훨씬 덜 들었다.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해졌다. 처음부터 이런 게 있는 줄 알았다면 작업이 훨씬 쉬웠을지도 모르갔다. 저 무지막지한 대나무 뿌리를 경운기로 모두 캐내기는 무리일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적어도 뿌리를 따라가며 땅을 파내는 일은 훨씬 쉽지 않았을까? 아니 뿌리에 걸리 경운기가 고장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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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깨끗하게 뜰을 정리한 다음 어쩌면 바로 잔디씨를 뿌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땅에 있는 잡초씨까지 완전히 제거하고 싶었다. soil solarisation을 시행하기로 했다. 투명 비닐로 땅을 덮어 땅의 온도를 높여 그 안에 잡초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여름 내내 비닐을 덮어 두었다.

가을에는 잔디씨를 뿌렸어야 하는데 미루다보니 시기를 놓쳤다. 아내는 잔디씨를 뿌리는 것보다는 잔디떼를 사다가 깔자고 했다. 돈는 더 많이 들겠지만 잔디씨를 뿌리는 것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또한 시기를 놓쳤다. 막상 잔디떼를 사려고 했을 때는 이미 비가 내리기 시작에 일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겨울 내내 비닐을 덮어두었는데, 바람이 불어 잡초 씨가 비닐 밑으로 파고 들었고 겨울 동안 비닐이 온실 역할을 하면서 결국 비닐 커버 밑에 온갖 잡초가 자라게 되었다. 아이고... 비닐을 벗겨내고 잔디깎이로 잡초를 밀어버렸지만 몇 주가 지나자 다시 잡초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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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온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대나무 때문에 망가진 잔디밭을 복구하지 못했다. 당장 경운기로 뜰을 갈아 엎고 잔디씨를 뿌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뒷뜰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트램폴린을 반대편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쪽도 잔디가 벗겨진 부분에 잔디씨를 뿌려놨기에 잔디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이제 여름이고, 여름은 잔디씨를 뿌리기에 좋은 계절이 아니다.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 올 가을에 계획대로 작업을 진행한다면 내년 봄에는 잔디로 덮인 뒷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