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 5
1
계속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어느새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게 내 일이 되었다. 그날은 두 아이 모두 사이클 코치라는 자전거 연습 클럽에 가야 해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자전거를 끌고 학교에 가면서 계속 투덜대는 아이들을 겨우 어르고 달래 학교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 엄마는 아침 일찍 모임에 나가고 없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다. 커피 한 잔 뽑아들고 소파에 앉았다. 그날따라 그 짧은 여유가 그렇게 달콤하고 평온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잠깐 멍때리고 있다가 책을 읽으려 킨들을 켰다.
2
전화벨이 울렸다. 학교에서 온 전화였다. 둘째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다쳤다며, 빨리 학교로 오라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크게 적정하지는 않았다. 넘어져서 어디 조금 까져서 피나고 아파서 우는 정도겠지, 괜찮을꺼야...
학교 사무실에 도착했다. 둘째 아이가 딸음 뻘뻘 흘리며 울고 있었다. 사무실이 많이 더웠다. 학교 직원이 아무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GP에 먼저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바로 A&E로 가라고 했다. 앰뷸런스를 부르면 언제 올지 모르니 그냥 차타고 바로 가는게 빠를 거라고 알려주었다.
일단 아이 엄마를 부르고, 집에 가서 차를 가져와 아이를 태우고 근처 큰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는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지만 잘 버티고 있었다. 심각하지 않을꺼야, 그냥 넘어져서 팔에 충격이 가서 아픈걸꺼야... 그때까지도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 아니 기대하고 있었다.
3
A&E에서 접수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막상 정형외과 대기실로 가니 기다리는 사람이 좀 있었다. 전광판을 보니 예상 대기 시간이 세 시간 반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니, 아이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세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절망감이 밀려왔지만, 그저 빨리 불러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딸아이 이름이 불렸다. 세 시간 반이란 예상 대기 시간을 보고 자포자기 심정이어서 그랬는지 대기시간이 무척 짧게 느껴졌다. 진료실에서 간호사가 여러 질문을 하고 온도를 재더니 다시 기다리라 했다. 다시 대기실로 나왔다. 처음보다 대기실에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딸아이 이름이 다시 불렸다. 이번에는 의사가 딸 아이를 보며 이것 저것 질문을 하더니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확인한 의사가 말하길 팔꿈치 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플래스터 룸에 가서 팔에 깁스를 했다. 다시 질료실로 돌아왔더니 다른 방으로 안내하며 거기서 기다디라 했다.
의사는, 이런 종류의 골절은 아이들에게 매우 흔하다며, 아이들은 성장이 왕성하니 금방 나을거라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나는 골절 경험이 없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할 수 없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렇게 잘 참아내고 있는 아이가 대견했다. 아이 팔이 부러진 것도 모르고... 마음이 아팠다.
4
아무리 기다려도 의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확인하지 않아 얼머나 기다렸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시계를 확인한 후 40분 정도가 더 지난 후 의사가 나타가 나타났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 아무래도 입원이 필요할 것 같아 병실은 알아보고 있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깁스를 했으니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의사 말이 뼈를 정확하게 맞추고 제대로 붙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기 위해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정이 잘 안 되면 골절 부위에 철심을 박아야 한다고 했다. 아니, 수술이 필요하다고? 게다가 철심을 넣어야 할지 모른다고?!
믿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영국 의사들은 몸에 칼 대는 걸 매우 꺼린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의사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수술 시 위험성을 설명하면서도 수술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훨씬 크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수술에 동의했다.
5
얼마 후 병상을 확보했다고, 병실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병실로 갔다. 의사가 병실로 와서는 다시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가 그 설명을 듣고는 겁이 났는지 수술을 안 한다며 울기 시작했다. 마취하고 수술할테니 안 아플꺼라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아이 앞에서 수술 과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설명하는 것은 적절해보이지 않았다. 병실에서 나와 좀 떨어진 곳으로 가서 의사와 대화를 더 나누었다. 수술은 바로 다음 날 진행할 예정이라 했다. 영국 의료시스템은 느려터지기로 악명이 높은데,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이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 간호사들이 와서 아이를 잘 달래놓았다. 아이 엄마에게 들으니, 간호사들이 아이에게 수술실에 들어가면 마스크 같은걸 쓰는데 거기서 가스가 나와서 잠들거라고 하며 잘 타일렀다고 한다. 어찌된 일인지 아이는 빨리 가스 마시는 걸 하고 싶다고 했다.
6
아이 엄마는 집으로 가서 병원에 있을 동안 필요한 것들을 챙겨왔다. 길어야 이틀 입원일텐데, 아이 엄마가 한 짐 싸가지고 왔다. 원래는 내가 병원에 있을 계획이었는데, 둘째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했다. 그렇게 아이 엄마와 교대하고 병실을 나섰다.
병원에 차를 세워놓은지 오래되어 주차비가 꽤 나왔다. 혹시 주차비 할인 같은게 없을지 물어봤더니 입원 환자의 보호자에게는 주차비가 면제된다고 했다. 이런, 진작 알려줬으면 아까 아이 엄마가 집에 다녀올 때 주차비를 안 냈어도 되는 거였는데... 그러나 벌써 낸 주차비는 돌려받을 수 없었다.
7
다음 날 첫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병원에 가서 아이 엄마와 교대했다. 수술하기로 되어 있지만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의사가 와서 말하길, 다른 급한 수술이 있어 딸 아이 수술이 오후로 미루저졌다고 했다. 딸아이에게는 점심이 나왔지만 보호자에게는 나오지 않았다. 구내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왔다.
다른 의사가 병실에 와서 딸아이에 대해 이것 저것 질문을 하며 수술 절차에 대해 다시 설명했다. 설명 중 마취하는 부분이 조금 달랐다. 마취 가스로 마취하는 것보다는 마취제를 주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더니 딸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마취 가스 마시면서 잠들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마취 가스 대신 마취 주사를 맞는다고 하니 무섭기도 하고 마음이 상한 모양이었다. 간호사들이 달려와서 달래려 했지만, 아이가 그렇게 울기 시작하면 달래기가 힘들었다. 일단 아이를 간호사들에게 맡기고 의사를 병실 밖으로 안내했다.
의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가 마취 가스를 기대하고 있으니 마취할 때 실제로는 주사를 놓더라도 마취 가스를 주는 시늉이라도 해달라고. 의사와 다시 병실로 돌아와서, 마취 주사 안 놓고 마취 가스를 쓸 거라고 어르고 달래 겨우 아이를 진정시켰다. 휴...
8
느즈막한 오후가 돼서야 의사들이 왔다. 드디어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바로 수술실로 가야 한다고 했다. 병상을 끌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 입구까지 동행할 수 있었다.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안심시켰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는데, 막상 수술실로 향하니 나도 긴장되었다.
수술실 입구에서 의사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내게 어떻게 수술할 것인지 알려주었다. 집도의는 지금껏 이야기 했던 젊은 의사들보다 연륜이 있어 보였다. 마취는 마취 가스를 쓰기로 했다고 알려주었다. 가스 마스크를 씌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잠들었다. 아이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눈가가 축축해졌다.
병실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의사는 간단한 수술이니 너무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게 부모의 마음인가보다. 예전에 첫째 아이가 입원했던 일, 어렸을 때 화상으로 병원에 두 달 넘게 누워있었던 일,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병실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책을 읽으려 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술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릴거라 했는데, 두 시간도 훨씬 넘어서야 수술이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골절 부위를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 철심을 두 개 박았다고 했다. 병실로 돌아오니 간호사가 말하길, 아이가 깨어나면 바로 퇴원해도 되고 하루 더 있다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혹시라도 응급상황이 생길지도 모르지 병원에서 하루 더 있는 게 안전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병실로 돌아온 후 한참 더 지난 후에 깨어났다. 수술때문에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그랬는지 배고프다고 했다. 간호사에게 먹을 달라고 부탁했더니 샌드위치와 스낵 같은 것을 가져왔다. 저녁을 먹은 후 아이는 다시 잠들었다. 그 날은 아이 엄마 대신 내가 병실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9
아침에 아이 컨디션이 괜찮은 듯 보였다. 아이 엄마가 병원에 도착해 퇴원 준비를 했다. 한 짐 싸왔던 것들을 다시 정리해 차에 실었다. 퇴원에 특별한 절차 같은 것은 없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편할 때 그냥 가면 된단다. 병원이 무료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그냥 나가려니 뭔가 빠뜨린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사가 와서 설명해주었다. 수술 부위가 감염되면 안되니 물이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혹시라도 열이나면 바로 응급실로 와야 한다고 했다. 수술 부위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므로 샤워할 때 팔을 감싸주는 방수 드레싱 커버를 사라고 알려주었다. 한 주 후에 다시 오기로 예약하고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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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도 아이 상태가 어떤지 물어왔다. 아이 수술이 잘 되어 다행이라고 하며, 아이가 학교에 오게 되면 학교 사무실에 꼭 들려달라고 했다. 주말에 집에서 쉬고 월요일부터 다시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학교 사무실에 갔더니 학교 직원이 아이의 안전을 위해 학교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지 설명했다.
학교에 도착하면 사무실로 가서 교직원이 아이를 교실까지 데려다 주고, 학교가 끝나면 교실에서 나올 때 같은 반 친구가 아이를 도와 교무실로 데려올 것이다, 체육 활동 시간이나 조회 시간에는 따로 의자를 준비해서 앉아 있도록 할 것이다... 등등이 적힌 문서를 보여주며, 내게 서명해달라고 했다.
사실 학교에 이런 절차가 있는지 몰랐다. 다친 학생이 걱정 없이 안전하게 교육 받을 수 있도록 학교에서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아마도 이런 사고가 종종 있기 때문에 표준 절차가 준비되어 있는 것 같았다.
11
아이가 열이 났다. 병원에 전화했더리 바로 오라고 했다. 수술 부위가 감염되었다면 당장 항생제들 쓰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플래스터를 뜯어내고 상처를 확인했다. 감염 징후는 없었다. 다행이었다. 플래스터를 다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주 뒤, 또 열이 났다. 병원에 연락했더니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전화를 받은 의사가 달랐는데, 먼저 GP에 연락해보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플래스터 룸으로 직접 전화를 했다. 다행히 지난 번 딸아이를 봐주던 의사에게 연결되었는데, 열이 난다니 바로 오라고 했다.
아무래도 뼈에 철심을 넣었기 때문에 감염에 매우 민감한 것 같았다. 또 플래스터를 뜯어내고 상처를 확인했다. 다행히 감염 징후는 없었다. 다시 플래스터를 했다. 벌써 세 번째 플래스터다. 의사들이 짜증내는 것 아닌가 걱정했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아이에게도 내게도 끝까지 매우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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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한 지 6주가 지났다. 뼈가 잘 붙었고 다음 주에 철심을 빼자고 의사가 말했다. 다음 주에 휴가를 떠나니 혹시 아침 일찍 할 수 있을지 물었더니, 보통 진료 시작을 9시에 하지만 그날 혹시 8시 45분 정도까지 나오면 빨리 해주겠다고 했다. 일단 월요일 9시로 예약하고 좀더 일찍 나오기로 했다.
월요일에 8시 40분 정도에 병원에 도착해 간호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플래스터를 뜯어내고 철심을 뽑으려 하는데 아이가 무서웠는지 마취하고 하면 안 되냐고, 수술했을 때처럼 마취로 자기가 잠든 사이에 하면 안되겠냐고 했다. 의사가 웃으며 금방 끝났다고 아이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철심을 빼는 것은 엄청 아팠던 모양이다. 아이가 엉엉 울었고 의사가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곧 괜찮아 질 거라고 아이를 달랬다. 어떤 느낌일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아플 것은 분명했다. 조금 지나서 울움을 그쳤고 괜찮아졌다. 이제 플래스터는 더이상 안 해도 되지만, 아이는 여전히 슬링(삼각건)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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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심을 제거한 곳에 웃자란 듯한 조직이 보였다. 의사는 그걸 그래뉼레이션 티슈(granulation tissue)고, 곧 없어질 거라 했다. 상처 부위가 말라서 딱지가 지면 다 낫는 거라고 했다. 나는 길어야 한 두 주 지나면 다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상처가 생각처럼 빨리 아물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지만 상처는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떤 간호사는 상처가 감염되면 안 되니 플래스터(깁스 말고 반창고, 영국에서는 반창고도 플래스터라 한다)를 열지 않는 게 좋다고 하고, 어떤 간호사는 상처를 말리는게 좋으니 플래스터를 열어두면 좋다고 하니 어떤 말을 따르는 게 좋을지 몰랐다.
상처를 커다란 반창고로 덮었는데, 아이 반창고 주변으로 피부가 벌겋게 되었다. 의사가 보더니 알레르기 같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아이 피부에 플라스틱이 닿으면 빨갛게 자국이 남아 며칠 가곤 했던 게 생각나 의사에게 설명했다. 플라스틱 없이 면으로 된 거즈와 붕대로 상처를 감싸야 했다.
결국 의사가 실버 나이트레이트(silver nitrate)를 써야겠다고 했다. 실버 나이트레이트로 그래뉼레이션 티슈를 태우면 상처가 빨리 아문다고 의사가 설명했다. 좀 아플거라며 치료를 시작했다. 의사들은 많이 아플때는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하고, 엄청나게 아플때는 조금 아프다고 한다는 걸 굳이 아이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긴 막대 모양의 실버 나이트레이트를 그래뉼레이션 티슈에 톡톡 찍어주면 부글부글 하며 하얀 거품같은 게 올라오는 게 보였는데, 보는 것 만으로도 아파 보였지만, 의외로 아이가 잘 참았다. 집에 오면서 아이에게 잘 참았다고 칭찬했더니, 내게 하나도 안 아팠다고 했다.
실버 나이트레이트를 쓰고 상처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한 주 후 다시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가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기 위해 오늘은 실버 나이트레이트를 좀 많이 하겠다고 했다. 그 날은 엄청 아팠던 모양인지 아이가 엉엉 울었다. 그날 이후로는 병원에 갈 때마다 오늘도 실버 나이트레이트 해야 하냐며 무섭다고 했다.
아이가 원래 겁이 많기도 하고, 첫날 잘 참는 걸 봐서 그랬는지 엄살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자꾸 아프다고 무섭다고 하니 마냥 무시할 수도 없어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게 아프긴 아픈 모양이다. 고통을 참기 어려우면 진통제를 먹으라는 설명까지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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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플래스터(깁스)를 하고 팔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팔을 완전히 접지도 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예약해 주었는데, 물리치료를 받을 때 아직 상처가 아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물리치료사가 적극적으로 팔을 펴지는 못했다. 대신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스트레칭 및 운동 방법을 알려주었다.
물리치료사는 치료 전 팔이 얼마나 많이 접히는지/펴지는지 각도를 재고, 치료 후에 다시 팔이 접히는/펴지는 각도를 재서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보여주었다. 각도를 재는 방법이 내가 생각하는 방법과 달라 물리치료사가 말해주는 숫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치료 후 팔이 더 많이 펴지는 것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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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장장 네 달에 걸친 치료가 끝났다. 지난 네 달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병원에 가야했다. 아이는 병원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학교에 늦었고, 나도 회사에 늦었다. 매니저는 가족이 우선이라며 가족을 돌보는데 시간을 충분히 쓰라고 했다.
살면서 병원에는 갈 일이 없는게 제일 좋긴 하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가.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는 대기시간도 길고 서비스 질도 낮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이번 사고를 겪고 NHS가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용 걱정 없이 신속하게 치료를 받았고, 의사와 간호사 모두 친절하고 환자를 돌보는데 성심을 다했다. 질문을 하면 의사든 간호사든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대답하고 설명해 주었다. 아이를 치료해준 의사와 간호사 모든 분께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그 분들이 내 블로그를 볼 일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