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원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감원

3월, 다시 9천명을 감원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연초 1만8천명을 감원한지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이다. 이번 감원 대상에는 내가 속한 AWS도 포함된다고 한다. 한국으로 휴가를 떠나기 한 주 전 이런 소식을 접해 마음이 무거워졌다. 돌아왔을 때 혹시라도 나쁜 소식을 듣게 되는 것 아닐까.

AWS에 직원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9천은 분명 적은 숫자가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감원 대상을 고르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그 9천 명에 포함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지금 팀으로 옮긴지 1년도 되지 않았고, 아직도 버벅이고 있기에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돌아온 주 수요일에 매니저와 1:1 면담을 했다. 예전 팀에서는 매주 매니저와 1:1 면담을 했는데, 지금 팀은 인원이 많아 2주에 한 번씩 1:1 면담을 한다. 이번 면담은 그냥 통상적인 1:1 면담이었다. 잠깐 형식적으로 휴가 이야기를 하고 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감원에 대해 물었더니, 지금도 일에 비해 인원이 부족한 상태다, 짤리더라도 갈 데는 많을 것이다,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글, 메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나온 수만 명의 사람들이 새 직장을 찾고 있을 텐데, 저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존경스러웠다.

매니저가 그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면담 일정을 잡았다. 지난 주에 면담을 했는데 이번 주에 또 면담을... 실수인가? 아니나다를까, 면담을 시작하기 얼마 전에 캘린더에서 일정이 사라졌다. 역시 실수였나보다. 혹시나 싶어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다른 일정과 충돌이 생겨 면담을 목요일로 옮겼다는 답이 왔다.

그런데 바로 그 날, AWS CEO로부터 온 메일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했다. 직원 수를 줄이기로 어려운 결정을 했으며 AWS도 여기에 포함된다(여기까지는 이미 아는 사실이다), 영향을 받는 직원들과 오늘부터 대화를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뒤에 AWS의 급성장과 낙관적 미래에 대한 전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매니저가 이번 주에 또 1:1 면담을 잡은 게 이것 때문인가? 눈 앞이 캄캄해졌다. 젠장, 요즘처럼 감원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선 새 일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모기지는 어떻게 갚고 가족은 어떻게 부양해야 하나... 과연 이 나이에 새 일자리를 찾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면담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면담이 시작되었다. 평소대로 일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회의가 끝날 때까지 조마조마했다. 매니저가 다른 질문이 있냐고 했을 때 재빨리 없다고 대답했다. 평소에도 질문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 날은 빨리 면담을 끝내고 싶었다. 내가 감원 대상이라는 말을 듣기 전에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미국에서는 당일 해고 통보를 하는 사례도 있는 것 같지만, 빅테크에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 것 같다. 예전에 영국은 미국보다 해고가 어렵다고 들었던 것 같다. 팀 동료는, 영국에서는 감원 하려면 회사가 정부와 협의를 해야 하니, 아직 시간이 많다고 했다. 그럼, 파도가 지나간 게 아니라는 뜻이냐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내가 감원 대상이라면 어떻게 피하려 하든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그날은 빨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아남은 것인가? 사실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은 무사히 넘어갔다. 내 어쩌다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며 사는 삶이 되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