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2
일요일,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U턴해 큰 길로 나가기 위해 차를 오른쪽으로 크게 돌리고 있었다. 오른쪽 차장 밖으로 뭔가 시커먼 것이 보이는가 싶더니 자동차에 충돌했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넘어져서 괴로워하는 게 보였다.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 차문을 열고 나가 운전자를 살폈다.
넘어져 있는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물어보며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여전히 아파했지만, 타박상을 조금 입은 것 같다며 괜찮다고 말했다.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자동차를 살폈다. 오토바이와 충돌한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아아...
오토바이 운전자는 나이가 어려 보였다. 18살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나도 그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단 현장 사진을 찍고, 오토바이를 일으켜 길가로 치우는 것을 도왔다. 상대에게 동의를 구하고 차를 길가로 옮겼다. 그리고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지 물었다.
이 사고는 내 잘못이 크다. 차를 돌릴 때 오른쪽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 차 뒤에는 밴이 주차되어 있었다. 오토바이 입장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내 차를 피할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조심성이 많고 비슷한 경우에 항상 주변을 잘 살폈는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이유를 알 수 없다.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그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이었다. 보험처리를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영국에서는 나이가 어리면 보험료가 매우 높다. 사고 기록이 있으면 보험료가 더 오를 것이다. 그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그래서 보험처리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오토바이는 그리 비싸지 않고 어차피 교체하려 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기 아버지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정당한 얘기다. 아직 어린 나이에 부모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속으로 그의 아버지가 합리적인 사람이기를 바랬다.
사고난 지점이 오토바이 운전자의 집 근처였다. 운전자 아버지가 나오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토바이 운전자의 아버지가 나와서 상황을 파악했다. 자기들끼리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한참을 얘기했다. 어디서 왔느냐 물었더니 폴란드에서 왔다고 했다.
내게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지 물어왔을 때, 보험처리하자고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아내가 연관된 사고가 어떻게 처리될지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내 사고까지 겹친다면 보험료가 크게 오를 것이다. 상대도 보험료가 오르는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도 사고와 연관되면 보험료가 올라간단다.
상대 아버지는 내게 '당신이 잘못한 것을 잘 알지 않느냐, 500파운드 정도로 합의를 보자'고 얘기했다. 오토바이도 속도가 빠르지 않았느냐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쨌든 내 부주의였다. 400파운드로 깎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쪽에서 450으로 하자고 했다.
얼마 전 사고 조사관이, 사고 시 절대 현금 합의하지 말고 보험사를 통해 처리하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현금을 줘도 상대방이 보험사에 클레임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현금를 줬다는 걸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금은 상대방에게 보너스가 될 뿐이니 항상 보험사를 통해 해결하는 게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꾼이 아닌 것 같았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아직 어려서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았고, 그의 아버지는 연륜이 있었지만 터문이 없는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합의 사항을 문서로 작성해 서로 서명하면, 합의금을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하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합의문을 작성했다. 합의문에 내 잘못임을 인정하고 450파운드를 알려준 계좌로 지급하겠다, 합의금을 지금하면 서로 더 이상의 책임이 없으며 사고와 관련된 채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 합의는 우호적 해결을 위한 것이지 어느 쪽의 유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걸 영어로 작성했다. 물론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직접 했다면 아마 이렇게 깔끔하게 작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세상이다. 합의문을 작성해 서명한 다음 스캔해 보냈고, 그쪽에서도 합의문에 서명해 다시 스캔해서 보내왔다. 그리고 약속한 금액 450파운드를 송금했다.
이렇게 사고 처리는 일단락 되었다. 지난 번 아내의 오토바이 충돌 사고가 난 지 겨우 한 달 반 정도 지났을 뿐이었다. 아직 그 사고 처리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 또 다른 사고가 난 것이었다. 변명의 여지 없이 내 잘못이엇기에 더욱 난감했다. 그리고 원만하게 잘 해결된 것 같다.
우리 차 수리는 따로 해야 한다. 뒷 문이 찌그러지기만 했다면 그냥 탈텐데, 창틀이 약간 휘었다. 다행히 비가 새는 것 같지는 않지만 폭우가 온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아마 이거 수리하는 데 돈이 꽤 들어갈 것 같다. 그리고 이 사고로 내 무사고 경력도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