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오래된 꿈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아낸, 컴퓨터가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단편: 오래된 꿈

1

주점에서 나올 때 그녀가 비틀거렸다. 한쪽 팔을 잡아 주었다. 순간 그녀가 휙 돌아 내 품에 안겼다. 돌발 행동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쪽 팔로 그녀를 안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내 품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너 내 방에서 자고 갈래?"

할 말을 잃었다. 조금 취했지만, 생각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이게 미쳤나? 아무리 친구라도 남자한테 자고 가라니, 무슨 의도지? 나를 남자로 생각하지 않는 걸까? 유혹하는 건가? 시험하는 건가? 그냥 장난인가?'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내일 출근은...?'

그 와중에 출근 걱정이라니, 한심했다. 아무 말 없이 너무 오래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뭐라 답하는 게 멋져 보일까?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제발 무슨 말이든 대답을 하라고!' 속으로 외쳤다.

"남녀가 유별하거늘, 어디서 되지도 않는 소리를!"

대답과 동시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바보같은... 망설이다 가장 한심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녀가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조금 비틀거려 부축해 주었다.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도, 나도 말이 없었다. 그녀를 집에 들여보내고 돌아섰다. 다시 생각해도 어리석은 대답이었다. 큰 길로 나오자 속이 울렁거렸다. 마셨던 술을 모두 토했다.

그날 이후 여러 번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역시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이제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휴대폰 주소록에서 그녀를 지웠다.

2

퇴근하는 데 전화가 왔다. 그녀였다. 주소록에서 지웠지만 번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결혼했다면서? 왜 연락 안 했니?"

얼마만이었을까? 수십 번을 전화해도 안 받던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았지만, 모두 지난 일이다.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싶지 않아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됐다."

그리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어차피 중요하지도 않다. 무슨 의도로 갑자기 전화했는지 알 수 없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짝사랑했지만, 고백할 용기는 없었다. 그녀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었지만, 그녀 앞에만 서면 나는 작아졌다. 말은 꼬이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그녀가 먼저 연락해와 한참을 이야기하고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갑자기 바쁘다며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 답장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마음 아파 포기하고 잊으려 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연락해 왔다. 그게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 했고 오랫동안 그녀를 잊지 못하게 했다.

이번에는 전화 통화 후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스스로 대견하다 생각했다. 결혼했으니까. 지켜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

3

결혼 후 그녀를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가끔씩 꿈에 나타나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잠재의식 속에는 여전히 그녀가 남아 있었나 보다.

꿈은 대부분 비슷한 패턴이었다. 어쩌다 그녀를 만난다, 그녀에게 다가가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런 저런 것들이 계속 방해한다, 결국은 그렇게 그녀 주변만 헤매다가 깬다...

그렇게 꿈속에서 그녀를 보고 나면 마음이 착잡했다. 꿈속에서도 그녀는 찬란했고 나는 초라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꿈 속에 또 그녀가 나왔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사랑해."

이런 식의 꿈은 처음이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그런데 내 마음은 평온했다. 의외였다.

나는 침착하게 답했다.

"나 결혼했어."

그게 마지막 꿈이었다. 이후로는 꿈에서 그녀를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인가. 이제 그녀를 만나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