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믹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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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샤워 믹서 교체 시도가 실패로 끝난 뒤 두 달쯤 지난 것 같다. 아내의 잔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아내는 아는 사람에게 배관공을 소개받아 오더니 내게 연락해 보라고 재촉했다. 배관공에게 연락해 물어보니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사진을 보내고 문제를 설명했더니 더 이상 답이 없었다. 그 배관공도 어떻게 작업해야 할지 난감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직접 해결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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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샤워 믹서가 문제라는 것은 확인했다. 하지만 샤워 믹서를 교체하는 일은 Z 커넥터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 커넥터의 나사산 부분이 너무 길어 샤워 믹서를 샤워 부스 벽에 딱 밀착시킬 수 없었다. 나사산이 짧은 Z 커넥터를 찾을 수만 있다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구글 제미니와 ChatGPT에 물어 부품 이름을 알아낸 뒤 아마존에서 검색해 보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만약 지금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샤워 믹서를 구입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알아보니 생각보다 가격이 많이 비쌌지만, 이 오래된 숙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눈물을 머금고 거금을 들일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집에 설치된 모델은 꽤 오래된 제품이라 요즘 나오는 모델이 기존 것과 완전히 동일한 규격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일단은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고, 정 안 되면 이 선택지로 돌아오기로 했다.
샤워 믹서를 뜯어내 완전 분해한 다음 깨끗하게 청소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실은 진작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샤워 믹서를 뜯어내려면 메인 수도를 잠가야 하는데 그러면 집 전체에서 물을 쓸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물을 못 쓴다면 샤워 믹서를 청소하는 것조차 난감해진다. 만약 샤워 믹서를 뜯어낸 뒤 배관을 임시로 막아 둘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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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제미니에게 샤워 믹서를 분해해 청소하는 동안 물을 막아 둘 만한 방법이 없을지 물었더니 몇 가지 옵션을 알려 주었다. 아, 이런 게 있다는 걸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Push-Fit Stop End는 파이프 끝에 밀어 넣기만 하면 완벽하게 물을 막아 주는 캡이라고 하지만, 노출된 파이프 길이가 충분하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Compression Stop End(또는 Blanking Cap)라는 녀석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마존에서 검색하니 나오긴 했지만, 급한 마음에 근처 Screwfix 매장에 직접 가서 사 오기로 했다. 제미니는 3/4인치짜리를 써야 한다고 했지만, 실물을 보니 너무 커 보였다. 그래서 3/4인치뿐만 아니라 그다음 크기인 1/2인치짜리도 함께 달라고 했다. 냉수와 온수 파이프를 모두 막아야 해서 2개가 필요했지만, 1/2인치짜리는 재고가 1개뿐이었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역시나 3/4인치는 너무 컸다. 1/2인치짜리를 대 보니 딱 맞긴 했는데, 나사산 부분이 너무 길어 끝까지 들어가지 않았고 그 사이로 물이 샐 것 같았다. 아마존을 뒤져 보니 나사산이 짧은 제품이 보여 2개를 주문하고, Screwfix에서 사 온 플러그는 모두 반품했다. 하지만 정작 아마존에서 산 녀석들은 우리 집 파이프에 맞지 않았다. 아이고...
좀 더 찾아보니 나사산이 길어도 테프론 테이프를 감아서 작업하면 물이 새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Screwfix에서 샀던 1/2인치 플러그가 파이프에 맞는 것을 확인했으니, 여기에 테프론 테이프를 감고 조이면 물을 확실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다시 Screwfix에 가서 1/2인치 플러그를 사 와 파이프를 막아 보았다. 메인 수도를 열어도 물이 새지 않았다.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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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믹서를 떼어내고 파이프를 막았으니, 이제 샤워 믹서를 분해해서 깨끗하게 세척할 차례였다. 예전에 집에 샤워 믹서 매뉴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AI의 도움을 받아 샤워 믹서 매뉴얼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매뉴얼을 자세히 살펴보니 예전에는 분해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분해하는 법이 나와 있었다. 다만, 샤워 믹서에서 카트리지를 빼내는 데 필요한 전용 도구가 없다는 게 걸렸다.
처음에는 석회 제거제 같은 화학제품을 쓰려 했으나, 제미니가 식초와 물을 1:1로 섞어 세척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알려 주었다. 세척액을 준비한 뒤 샤워 믹서에서 분해한 필터와 카트리지, 그리고 믹서 본체까지 세척액에 푹 담갔다. 1~2시간쯤 담가 두라고 해서, 1시간 30분 동안 두기로 했다. 30분마다 칫솔로 구석구석 문지르고, 믹서 손잡이도 이리저리 돌려주었다. 시간이 지나 꺼내 보니 샤워 믹서가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깨끗한 물로 여러 번 헹군 다음 샤워 부스로 들어가 샤워 믹서를 다시 설치했다. 손잡이는 새것처럼 부드럽게 돌아갔지만, 정작 물이 생각만큼 뜨거워지지 않았다. '아아, 결국 안 되는 건가?' 절망하려던 순간, 문득 예전에 매뉴얼에서 온수 온도 조절 밸브에 대해 봤던 기억이 스쳤다. 매뉴얼을 다시 찾아본 뒤 육각 렌치로 밸브를 돌려 온수 온도를 가장 높게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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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를 틀어 보니 뜨거운 물이 잘 나왔다. 하지만 온수가 좀 더 뜨겁게 나오도록 밸브를 조절할 때 너무 힘을 준 탓인지, 아니면 카트리지에 무리가 갔는지 물을 잠가도 샤워 헤드에서 물이 한 방울씩 계속 떨어졌다. 매뉴얼을 찾아보니 이런 경우에는 카트리지를 교체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카트리지를 검색해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집 샤워 믹서 모델에 딱 맞는 카트리지를 찾는 일이었다.
마지막에 좀 더 뜨거운 물을 욕심내다가 일을 망쳐 버렸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물이 얼마나 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샤워 헤드 아래에 물통을 받쳐 두었다. 다음 날 확인해 보니 물통이 가득 차 있었다. 밤새도록 한 통을 다 채우고 넘쳤는지는 알 수 없다. 물이 이렇게 계속 샌다면 카트리지를 바꾸든, 샤워 믹서 전체를 교체하든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거짓말처럼 물이 새지 않는 것 같았다. 분명 샤워 헤드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방울이 보이지 않았다. 누수 문제가 해결된 것인가? 그렇게 마음을 놓고 있었지만 사실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다시 확인해보니 여전히 물이 조금씩 새고 있었다. 물이 많이 새는 것은 아니니 당분간은 그대로 놔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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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두세 주가 지났다. 아내가 샤워 헤드도 바꾸고 싶다고 사 놓았는데 계속 작업을 미루고 있었다. 샤워 헤드 교체하는 것은 사실 5분도 안 걸릴 일이다. 그냥 예전 샤워 헤드를 떼어내고 새 샤워 헤드를 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작업을 시작하는 데도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한다. 샤워 헤드를 교체한 후로 신기하게도 더 이상 물이 새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안방 욕실 샤워 믹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제대로 확인해 보지 않고 배관공을 불러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100나 지출한 것은 여전히 속이 쓰리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속을 썩이던 문제를 직접 해결했기에 조금은 뿌듯했다.
한동안 신경을 안 썼더니 뒷마당에 잡초가 난리가 아니다. 이번 여름은 비가 거의 오지 않아 잔디는 노랗게 말라가지만 잡초는 푸르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이 녀석들도 손을 좀 봐줘야 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